[ESG칼럼]영남권 산불, 방치목과 2차 피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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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호 전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백재호 전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

“하루도 편히 못 쉽니다. 산을 볼 때마다 그날이 떠올라요.”

경북 안동·의성·영양 등 영남권 일대의 주민들은 3월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이 남긴 상처 위에서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 산은 여전히 검게 그을려 있고, 피해목은 방치된 채 나뒹굴고 있다.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복구의 첫 삽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곳도 많다.

산림청이 당초 발표한 산불 영향 면적은 약 4만5000㏊였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그 두 배가 넘는 9만㏊, 서울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초대형 피해로 확인됐다. 그러나 복구 계획은 이 엄청난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단순한 산림 손실을 넘어,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산이 마치 화마에 그을린 유골처럼 변했어요” “아이들도 무섭다고 해요”라는 주민의 증언은, 현재의 방치가 단순 행정 지체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정서적 파괴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2차 피해다. 피해목은 불완전 연소된 채로 남아 있으며, 집중호우 시 산사태, 토양유실, 침수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고사목과 탄화목은 뿌리가 약해져 있어 지반을 지탱하지 못하고 급경사지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병해충 번식도 우려된다. 마땅한 활용 방안 없이 수개월 간 방치될 경우, 해충 밀집과 산림 병변 확산으로 산림 생태계가 추가로 망가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피해목이 방치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리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주민 신뢰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벌채 지연은 단순 예산 부족이 아니라, 재난 관리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이 지난 4월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연 '괴물 산불, 산림청은 책임지고 사죄해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이 지난 4월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연 '괴물 산불, 산림청은 책임지고 사죄해라'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산불 피해목 벌목은 일괄적이 아닌, 생태적·안전 중심의 선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숲의 자연 회복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복원에 도움이 된다.

주민들은 지금, 산림복구보다 먼저 마음의 복구를 호소하고 있다. 그 시작은 바로 피해목 정리와 복구작업의 신속한 착수다. 행정적 검토와 예산 논의는 그 뒤의 일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추진해야 할 산림정책은 예방 중심의 산림관리, 기후위기, 도시 확장, 인위적 실화(실수로 내는 불) 등의 복합적인 원인을 고려해 '예방' '대응' '복원' 세 가지 축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피해지 복원과 기후변화 대응형 산림정책은 자연적 천이(자연회복)를 우선 고려하되, 침식 위험 지역은 선제적 조림을 하고 조림 시 산불에 강한 수종(참나무류) 위주로 식재해야한다.

무엇보다 산림전환이 절대 필요한 단일 침엽수림을 혼효림으로 전환해 다양한 수종을 섞어 화재 저항성을 높이는 한편, 산불 빈발 지역 중심으로 방재숲 조성 사업을 추진해야한다.

그리고 주거지 인접 산림관리 강화해야 한다. 산불이 주거지로 확산되지 않도록 방화림 구축할 수 있다.

지자체와 연계된 국가 산불방지 종합계획 수립도 필요하다.

“정부가 우리 마을을 잊지 않았다는 걸, 하루빨리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영남권 산불 피해 주민의 목소리에 울림이 있다.


이제는 결단의 시간이다. 산림을 살리고,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첫 걸음을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내딛기를 바란다.

지난 4월 9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따개비마을이 지난달 번진 산불로 여기저기 타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4월 9일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따개비마을이 지난달 번진 산불로 여기저기 타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백재호 전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 lyrabj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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