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명 김동원 기자
- 입력 2025.08.26 11:06
“시민과 소통 안 하는 AI는 데이터 폭력”
기술과 자본은 있지만 교육 철학은 부재
핀란드처럼 교사 연구력과 사회적 합의가 답

“시민과 소통하지 않는 인공지능(AI)은 일종의 폭력입니다.”
김영환 부산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의 경고다. 그는 25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I 강국 전략, 교육 주권과 데이터 주권에서 시작된다’ 세미나에서 “교사의 참여 없는 AI 교육정책은 실패를 반복할 뿐”이라며 교육정책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30년 넘게 교육공학 분야에서 활동한 김 교수는 이날 자신이 몸담았던 분야를 향해서도 날 선 자성을 보였다. 미국에서 석·박사를 받고 NASA 등에서 연구한 그는 “교육공학이 교육정책에 답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정치인과 재벌의 앞잡이가 돼 교육을 가장 많이 망가뜨린 주범이 됐다”고 고백했다. 이번 세미나는 인공지능 전문매체 더에이아이(THE AI)와 AI민간특별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정책학회가 주관했다.
◇ “철학 없는 AI 정책은 재앙”
김 교수는 현재 AI 교육정책의 가장 큰 문제로 ‘철학의 부재’를 지적했다. “기술과 자본은 있지만 제대로 활용할 교육 철학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OECD 중심의 글로벌 교육개혁 운동이 들어오면서 표준화와 성과 중심, 기술결정론적 접근이 지배하게 됐고, 이것이 현재 AI 융합교육 정책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실패의 구체적 사례로 현재 대학에서 진행 중인 AI 융합 교육을 들었다. 그는 “3년 전 공청회에서 이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7번 질문했지만 한 명도 답하지 못했다”며 “지금도 완전히 방향을 잃고 반복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런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 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를 지적했다. “학자의 탈을 쓴 정치인 앞잡이들이 교육부에서 정책을 만들고, 그 뒤에는 기업 이익이 따라붙는다”며 “정책 수혜자가 학부모와 학생이 아닌 특정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또 “정책은 전문가들의 독무대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AI 교육정책을 만들 때 제대로 현장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 핀란드처럼 교사 연구력과 사회적 합의가 답
그렇다면 AI 시대 교육 혁신의 해법은 무엇일까. 김 교수가 제시한 답은 ‘핀란드 모델’이다.
핀란드 관련 서적 50권과 논문 280편을 검토하고 직접 현지까지 방문한 그는 “핀란드 교육 성공의 비밀은 연구력을 가진 교사 양성”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핀란드 교사 양성 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모든 교사를 석사급(학부 3년+대학원 2년)으로 양성하되, 획일적 교직과목 대신 대학마다 자율적으로 교사를 기른다. 표준화된 교재도 없다. 김 교수는 “교직과목 체제는 일제강점기 잔재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며 “이런 체제로는 어떤 AI가 와도 교육 혁신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연수 방식도 다르다. 핀란드 교사들은 발령 후 형식적 연수 대신 필요에 따른 개별화 연수를 받는다. 정말 필요한 사람만 대학과 교육청에 요청해 일주일에 1시간씩 상담받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우리처럼 방학 때 하루 6시간씩 몰아서 수료증만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핀란드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1967년부터 7년간 인구 120만 명 중 2000명이 참여해 교육정책을 논의했고, 모든 과정을 공론화하고 공개했다. 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철학 없는 기술, 공공성 없는 지식인, 형식화된 참여”라며 “AI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그 기술을 설계할 수 있는 교육이 먼저 주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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