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와 손잡은 민간 대기업이 정부보다 앞서 인공지능(AI) 인프라 주도권을 가져갔다. 정부의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사업'이 민간 대기업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세계 1위 클라우드 회사인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울산광역시 미포 국가산업단지에 103MW(메가와트) 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투자 규모는 7조원대로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6만장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 데이터센터다.
SK텔레콤과 AWS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데이터센터 용량을 GW(기가와트)급으로 확대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AI 허브로 키운다는 구상을 세웠다. 울산 미포산단 부지는 인근에 SK가스의 세계 최초 GW급 LNG·LPG 겸용 가스복합발전소가 있어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수인 대규모 전력을 수급할 수 있다. LNG 냉열을 활용해 데이터센터를 냉각하기도 쉽다.
반면 국가 AI 컴퓨팅센터 사업은 두번이나 유찰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3일 민간 컨소시엄이 한 곳도 국가 AI 컴퓨팅센터 재공모에 신청하지 않아 유찰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관합작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그래픽처리장치(GPU) 3만장 규모의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정부가 SPC 지분의 51%를 가져가고 수익 모델은 불명확하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IT 기업들이 정부의 AI 컴퓨팅센터 구축사업을 외면한 이유다.
손에 쥔 게 없는 정부는 SK텔레콤과 AWS의 AI 데이터센터 사업의 뒤를 좇아가며 국가 AI 인프라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프라사드 칼야나라만 AWS 인프라 총괄 대표 등과 함께 울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가 대한민국 산업화 성공을 이끌었던 것처럼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시작으로 과감한 세제 혜택과 규제 혁신을 통해서 민간의 투자를 촉진하겠다"고 강조했다.
SK텔레콤과 AWS가 세우는 AI 데이터센터가 전국 주요 지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AI 고속도로' 정책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SK텔레콤의 울산 AI 데이터센터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3대 주력 산업이 밀집한 울산 산업계의 인공지능 전환(AX)을 가속하는 AI 인프라가 될 것으로도 전망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행사장에서 "울산은 AI 데이터센터를 통해서 정부 구상인 'AI 고속도로'의 강력한 새 엔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AI 인프라 사업은 국가가 직접 AI 컴퓨팅센터를 세우기보다 민간이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정부 정책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날 행사는 최 회장 외에도 정신아 카카오 대표, 이준희 삼성SDS 대표 등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들이 참석해 정부의 AI 인프라 구축 정책에 동참할 뜻을 표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