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반복 발사를 통해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수요를 확보하려는 '누리호 헤리티지' 사업이 추진된다. 전문가들은 이 사업이 국산 발사체의 시험비행을 넘어 수요를 토대로 한 발사 서비스 시장 창출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발사체 생태계를 키워야 향후 글로벌 수주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가 주관한 '민간발사체 산업활성화 토론회'에서 우주 전문가들은 누리호의 지속적인 발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주항공청은 내년부터 오는 2028년까지 1578억원을 투입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를 추가 발사하는 '누리호 헤리티지 사업'을 소개했다. 2027년 누리호 6차 발사 이후 2032년 차세대발사체 발사 사이에 발생하는 5년간의 국내 공백기간을 메운다는 전략이다. 정혜경 우주청 우주항공산업과장은 "국방부가 2028년 국방위성 2기를 누리호를 통해 발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페어링(위성 덮개) 개량이 필요하고 기존에 쏜 태양동기궤도 대신 경사궤도로 쏘는 실증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다수의 경사궤도 발사 위성 수요에 대응하는 등 누리호의 활용 기회가 더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누리호 헤리티지 사업에 대해선 누리호가 상용화로 가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과장은 "2029년 이후부터는 공공 수요를 발굴해서 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서 발사서비스 구매 제도를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국방·공공 위성이 해외 발사체에 의존하고 있어 보안 우려와 발사 일정 통제의 한계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 과장은 "국방위성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쏜다면 국가 기밀 유출이나 적시 발사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며 "이는 충분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유에 충분하다고 판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예산이 반영돼야 2028년에 발사할 수 있다고도 했다. 국방위성을 비롯한 다양한 임무의 공공위성을 국내 발사체가 수행하게 되면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고 독립적 우주전력 운용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전망이다.
진승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가 기간 발사체를 장롱 면허처럼 두면 안된다"며 "발사수요 확보를 통한 추가 발사 지속유지, 산업체 인력과 시설 및 장비 운영 유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자생적 산업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누리호 추가 발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기업들 역시 대한민국 발사체의 산업화를 위해 정부의 안정적인 발사 수요 확보가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준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무는 "누리호에 참여한 일부 기업들은 현재 일감이 없어 생산을 중단한 상태"라며 생태계 붕괴로 인한 민간 제조역량 저하를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공공분야 수요를 바탕으로 누리호를 다년 간 다회 발사하는 '블록 바이(Block-Buy)'형태의 계약을 추진한다면 생태계 존속은 물론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는 "발사 성공 이력이 민간기업의 사업화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정부가 공공수요를 기반으로 한 발사 서비스를 조속히 발주해야 국내 기업들이 해외 수주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선 미국, 일본 등 우주 선진국들의 발사체 산업화 사례도 소개됐다. 일본의 경우 2002년 자국 발사체인 'H-IIA'의 상업화를 결정한 후 정부 수요를 기반으로 한 반복 발사를 통해 개량 모델 4종을 확보하고 2009년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미국은 'LSP(Launch Services Program)'을 통해 공공위성을 민간기업이 발사할 경우 미 항공우주국(NASA) 자체 예산으로 다양한 인프라 및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김호식 포틀랜드주립대학교 교수는 한국의 민군간 중복개발, 정보 단절, 책임 회피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유사하게 과학·공공, 국방, 상업 3대 부문으로 체계화해야 한다"며 "각 섹터별 정책과제, 기술로드맵, 자금흐름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황 의원은 "예산 확대, 인재육성과 인프라 구축, 혁신기업 지원, 글로벌 협력 강화 등을 추진해 우주 산업의 도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기술 확보를 넘어 민간이 주도하는 발사체 산업 생태계 설계에 대한 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