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어머니날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 미국은 1914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Mother’s Day)’로 지정했다. 미국 어머니날의 시작은 1908년 웨스트버지니아주 그래프턴의 한 교회 예배였다. 애나 자비스가 어머니를 기리며 예배를 열었고, 이것을 계기로 미 전역으로 퍼졌다. 어머니 앤 자비스는 생전에 ‘어머니 우정의 날’을 만들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고, 딸이 그 뜻을 이어 제도화에 성공했다. 미국에는 아버지날도 따로 존재한다. 6월 셋째 주 일요일로, 1910년 소노라 스마트 도드가 남북전쟁 참전 용사 출신으로 5남매를 키우느라 헌신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시작한 행사에서 비롯됐다.
세계의 어머니날은 1925년 5월 16일자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당시 기사는 ‘미국 등지에서는 이날(어머니날) 어머니께 감사와 위안을 주기 위해 가슴에 눈송이같이 흰 가비손 꽃을 꽂는다’고 소개했다. 이듬해 5월에도 동아일보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이는 옷깃에 빨간 장미꽃을, 어머니를 여읜 이는 흰색 장미꽃을 꽂아 이날을 기념한다’고 보도했다.
1932년 동아일보가 우리도 어머니날을 기념하자는 사설을 실으며 관심이 시작됐다. 당시 어머니날의 유래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해, 사실과 상상이 뒤섞인 설명이 오가기도 했다. 이렇게나마 널리 알려진 어머니날이 본격적으로 기념된 것은 광복 후였다. 대한부인회가 행사에 앞장섰다. 서울시가 1952년 5월 8일에 어머니날 기념식을 열었고, 1955년 8월 30일에 국무회의를 통해 공식 기념일이 됐다.어머니날의 기원이 독립운동가 조신성의 장례일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조신성은 1953년 5월 5일에 사망했고, 앞서 말한 것처럼 1952년에 이미 서울시 주최로 어머니날 행사가 개최됐다. 당시 어머니날 운동에 앞장섰던 언론인 최은희는 어머니날의 유래를 설명한 칼럼(조선일보 1955년 5월 8일자)에서 “아버지날은 없느냐는 조롱을 받았던 4년 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어머니날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조신성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남편과 사별한 뒤 일본 유학을 하고 도산 안창호와 교분을 맺으며 진명여학교 교장을 지냈다. 이후 항일무장투쟁과 여성운동에 앞장섰고, 광복 뒤 북한의 회유를 뿌리치고 74세에 남하해 대한부인회 부총재를 지냈다. 하지만 고령에 혈혈단신 남하한 몸이라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부산의 한 양로원에서 82세로 사망했다. 그녀는 위대한 독립운동가였지만,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간 인물은 아니다.
어머니날을 만든 애나 자비스는 기념일이 된 후 어머니날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 어머니날을 없애려고 노력하기까지 했다. 우리도 어버이날이 상업적으로만 소비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이문영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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