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2015년 시장 점유율 ‘50% 벽’이 무너진 후 10년 만에 다시 한번 앞자리가 바뀔 위기에 빠졌다. 가입자 이탈로 시장 점유율이 조만간 30%대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국회,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SK텔레콤이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SK텔레콤발(發) 통신비 인하 논쟁에 다시 불이 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심 대란은 고비 넘겨
4일 SK텔레콤은 일일 브리핑을 통해 “유심보호서비스 가입자가 이날 기준으로 2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SK텔레콤은 지난 2일부터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을 우선 대상으로 전체 가입자의 90%에 달하는 고객의 자동 가입을 진행 중이다. 자동 가입이 완료된 고객에게는 해당 내용을 알리는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유심 교체도 원활하다. 전날까지 약 95만6000건이 처리됐고, 하루 약 20만 명이 예약 신청하고 있다. 누적 예약 신청자는 760만 명을 넘겼다. 황금연휴 출국자가 몰린 전날 인천국제공항 등에서 유심 교체가 2만 건 이뤄졌다. 전국에 이날에만 약 10만 개의 유심이 공급됐다. 김희섭 SK텔레콤 PR센터장은 유심 교체 여유분과 관련해 “5월 말까지 재고는 500만 개”라며 “오늘(5일)부터 T월드 2600개 매장이 유심 교체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유심 해킹에 따른 피해 사례는 현재까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SK텔레콤은 유심보호서비스나 유심 교체 없이 출국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회사 측이 100% 보상 책임을 지기로 했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전날과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 등 공항을 직접 방문해 현장 상황을 점검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우려했던 파국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대선 국면과 맞물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의 피해 보상 요구가 빗발쳐서다. 정치권에선 오는 8일로 예정된 청문회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8일 ‘SK텔레콤 단독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유 대표를 비롯한 관련 인사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점유율 40%대 붕괴 ‘초읽기’
최대 쟁점은 위약금 면제 여부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의원 모두 위약금 면제를 요구하는데 SK텔레콤은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결정권자인 최 회장이 청문회에 출석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법적 검토 없이 정치권 요구를 받아들이면 경영진이 배임 이슈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위약금 면제는 SK텔레콤이 가입자 이탈의 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다.
SK텔레콤 가입자 이탈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달 SK텔레콤에서 KT, LG유플러스로 이동한 가입자는 23만7000여 명으로, 전월 대비 약 87% 급증했다. 1일 하루에만 SK텔레콤을 떠난 가입자가 3만8716명에 달했다. 이 추세라면 3월 말 기준 40.2%인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은 조만간 30%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최 회장의 사과와 함께 파격적인 대안을 내놓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통신비 인하 카드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SK텔레콤은 2000년에도 정부와 시민단체의 압박으로 기본료와 통화료를 인하했다. 최근에도 정부는 5세대(5G) 요금제 다양화 등을 통해 통신비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가입자를 늘리거나 제4이동통신 사업자를 선정함으로써 경쟁을 통해 통신비를 내리려고 했던 정부가 SK텔레콤 보안 사고를 계기로 전방위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