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로 얼룩진 CIA의 ‘레짐 체인지’ 공작[정일천의 정보전과 스파이]

1 week ago 10

‘이란-콘트라 사건’ 당시 미국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오른쪽)과 정부 각료들. 출처 위키피디아

‘이란-콘트라 사건’ 당시 미국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오른쪽)과 정부 각료들. 출처 위키피디아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한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작전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표면적으로는 불법 이민자와 마약을 문제 삼고 있지만 막대한 석유 자원을 보유한 베네수엘라가 남미 좌파 블록의 중심 국가로 남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속내가 읽힌다. 미국은 1989년 파나마 침공 당시 조직 범죄와 마약을 명분으로 마누엘 노리에가 정권을 교체한 전례가 있다. 이번 보도가 사실이라면, CIA는 마두로 제거를 통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 공작을 본격화한 셈이다.

냉전 시기 CIA는 중남미에서 반미 성향의 좌파 정권을 축출하기 위한 작전을 수차례 감행했지만, 실패했다. 1961년 존 F 케네디 행정부가 주도한 쿠바 ‘피그만 침공 작전’이 대표적이다. CIA는 미국 내 쿠바 망명자 약 1500명을 게릴라 부대로 훈련시켜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려 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계획이 사전에 노출된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으나, CIA의 독선과 정보 판단 실패 등도 비판을 받았다. 작전 개시 후 쿠바 민중이 봉기해 동조할 것이라는 CIA의 기대는 완전히 오판이었다. 또한 미국의 직접 개입을 숨기려다 보니 필요한 군사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등 작전 전반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결국 작전 실패는 케네디 당시 대통령에게 집권 초기부터 큰 정치적 타격을 안겼다. CIA는 조직 해체설이 나올 만큼 신뢰를 잃었다. 피그만 침공은 내부에서 반대 의견을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집단사고에 의한 대표적 실패 사례로 손꼽힌다.

CIA가 실행한 중남미 비밀 공작 중 또 하나의 오점이 ‘이란-콘트라 사건’이다. 1979년 중미의 니카라과에서 우익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정권이 무너지고 산디니스타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우익 반군인 콘트라를 지원하며 정권 교체에 나섰다. 그런데 미 의회가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막자, CIA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승인하에 적성국인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자금을 반군에 지원했다. 당시 미국은 레바논에 억류된 자국민 인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란이 레바논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건으로 무기를 몰래 판매한 것이었다. 하지만 1986년 언론이 이 비밀 거래를 폭로하면서 CIA가 콘트라 반군의 마약 유통을 미국 내 위탁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결국 공작은 중단됐고, 레이건 대통령은 탄핵 위기까지 몰렸으며 CIA의 비밀 공작에 대한 미 의회의 통제는 강화됐다.

이처럼 중남미에서 CIA가 벌인 레짐 체인지 공작은 독재정권 지원과 불법 거래 등 부작용을 남기며 흑역사로 남았다. 정보기관이 위험을 감수하며 비밀 공작을 실행하는 이유는 전쟁과 같은 무력 개입보다 목표 달성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 이후 사라진 듯했던 레짐 체인지 공작이 중국의 부상으로 촉발된 ‘신냉전 체제’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다만 과거의 지도자 암살, 내부 반란 유도, 대안 세력 육성 같은 고전적 수법이 아닌 소셜미디어 여론 조작, 선거 개입, 사이버 공격 등 보다 교묘한 형태로 진화됐다. 이제 물리적 총구 대신 사이버 공간의 키보드가 정권 교체의 도구가 되는 세상이 됐다.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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