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매드맨’ 트럼프도 두 손 든 美 국채 투매

1 month ago 8

“때로 무엇인가를 고치려면 약(medicine)을 먹어야 한다.” 미국이 2일 상호관세를 발표한 뒤 미국 주식시장에선 연이틀 대폭락장이 연출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태연했다. “꽉 잡고 버텨라. 끝은 아름다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장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9일 “국채 시장을 보니 사람들이 약간 불안해하더라”며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했다. 증시 패닉과 동맹국의 반발에도 꿈쩍하지 않던 그를 채권 시장이 막아 세운 것이다.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은 통상 반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아 치우는 동시에 가장 안전하다던 미 국채도 대량으로 내던졌다. 대규모 국채 매도는 자칫 정부 존립을 뒤흔들 수 있는 ‘폭탄’이다. 2022년 영국의 리즈 트러스 총리를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도 국채 투매였다. 재원 대책 없이 감세 정책을 내놓자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를 대거 매도했고, 결국 국채 가격과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해 위기를 맞았다.

▷미국은 특히 국채에 민감하다. 정부 빚이 많기 때문이다. 미 연방정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36조1400억 달러(약 5경2500조 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채 이자로만 국방비보다 많은 1300조 원 가까이 썼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가 오르는데, 워낙 빚이 많다 보니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이자 부담이 급증한다. 재정적자 감축을 목표로 내건 트럼프 대통령에겐 재앙 같은 상황이다. 모기지론(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이 국채 금리에 따라 오르게 되면 미국민들의 생활에도 큰 타격을 준다.

▷갑자기 미국 국채를 팔아 치운 건 누구일까. 일단 주가 급락으로 큰 손실을 본 헤지펀드들이 채권을 팔아 현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채권 투자자 일부가 ‘채권 자경단’으로 나섰다는 해석도 있다. 정부의 재정 및 통화정책에 반발해 항의의 의미로 국채를 대량 매도하는 투자자들을 말한다. 미국 국채를 1조 달러 이상 쥐고 있는 일본과 7600억 달러가량 보유한 중국이 관세 전쟁에 대한 맞불로 투매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일단 상호관세 유예로 한 고비를 넘겼지만 미국 금융시장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 엄포와 철회가 반복되며 미국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제조업을 살리고 적자를 줄이면서 중국도 견제하고 달러 패권도 놓고 싶지 않은 모순된 목표 때문에 정책 방향이 널뛰기를 한다. 이러다 보니 과연 미 달러와 국채가 세계의 안전자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졌다. 그나마 ‘매드맨’ 트럼프도 결국 시장을 이기긴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횡설수설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오늘의 운세

    오늘의 운세

  • 아파트 미리보기

    아파트 미리보기

  • 횡설수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