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의 시네마 오디세이] 신자본주의 속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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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 시네마 오디세이] 신자본주의 속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

자본주의 시장에서 우리는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현실은 도덕의 울타리를 넘어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행동을 하기 전 ‘어쩔 수가 없다’며 행동의 지표로 삼기도 하고, 후회막급인 행동을 하고 난 뒤 자책감을 덜어내고자 이 말로 위안 삼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세계 4대 국제영화제 중 하나인 토론토국제영화제(TIFF)에서 관객상을 처음으로 받는 등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추리소설의 대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로도 나왔다. 박찬욱 감독은 이 원작을 비틀며 현 시대성을 가미해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에서의 ‘어쩔 수가 없다’는 불온한 행동을 시작하기 전 마음 상태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은 외벌이인 경우 가정 경제의 지나친 책임감에 허덕인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노동자를 이중으로 옥죈다. 산업 자동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정리해고 때문에 많은 노동자의 삶이 뿌리째 뽑히고는 한다. 영화를 통해 회사의 톱니바퀴 중 하나인 노동자의 운명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중산층 가장 만수(이병헌 분)는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고,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 취미생활을 같이하며 두 아이, 반려견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다. 회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해고 통보를 받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재취업 기회를 엿보며 아르바이트 사이사이 면접을 준비한다. 취업 자리는 하나고 너도나도 해고에 밀려 전문능력을 갖춘 지원자는 너무 많다. 과연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뚫을 것인가. 급기야 구석에 몰린 만수는 경쟁자가 없어야 자신의 자리가 생긴다는 생각에 미친다. 만수는 다니고 싶은 회사인 ‘문 제지’를 찾아가 필사적으로 이력서를 내밀지만, 회사 반장인 선출(박희순 분) 앞에서 굴욕만 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영화는 그동안 박찬욱 감독 영화가 지닌 심오한 상징을 버리고 코믹을 택하는 방법으로 신자유주의와 경쟁지상주의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동자의 현실을 풍자한다. 가브라스 감독의 2005년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지만 도입부와 수미쌍관으로 어떤 여자가 주인공을 찾아와 역으로 이제 주인공이 제거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편 박찬욱 감독은 이제 해고 문제는 인간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인공지능(AI)과 경쟁해야 한다는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급변하는 세계에 우리는 어떻게 자본의 논리에 희생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영화가 끝나고도 우리 머리를 맴돈다. 영화는 기업의 이익 추구가 개인 노동자를 어떻게 압박하면서 진행하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보고서다. 주인공 만수는 재취업에 결국 성공했지만, 아서 밀러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에서의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죽음처럼 새로운 비극이 슬쩍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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