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도통신 한일수교 60주년 기념 대담서 30년 인연 풀어놔
홍명보 "승리하려면 선수 시절 모리야스처럼 헌신적 플레이 필요"
모리야스 "한국축구 4강 신화 덕에 북중미 월드컵 우승 꿈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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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국 축구 대표팀 홍명보 감독(왼쪽)과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지난 달 26일 일본 지바현 일본축구협회(JFA) 드림필드에서 열린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특별 대담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7.5 [교도통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16강, 8강, 4강까지 올라가며, 일본에서도 많은 분이 응원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다시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일본이 더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존재가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이 좋은 라이벌, 좋은 동료로 연결되며 이러한 모습이 일반 사회에도 번져 나간다면 매우 기쁠 것 같습니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
한국과 일본 축구는 영원한 라이벌이다. 한때는 한국이 앞서나가며 일본의 길잡이가 돼줬으나 지금은 반 발 앞지른 일본이 한국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으로 홍명보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과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 두 56세 동갑내기 사령탑의 대담을 진행해 10일 유튜브로 공개했다.
두 지도자는 한일전의 역사와 현역 시절 추억을 돌아보고 지도 철학을 나누며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에서 만나기를 바랐다.
◇ 홍명보 "1990년대 일본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두 감독이 처음 맞붙은 경기는 1992년 8월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에서였다. 팽팽했던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이후 한일전이 열릴 때마다 '일본 대표팀엔 이런 선수가 있다'며 모리야스 감독 이름이 언급됐다. 인상 깊었던 건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헌신적이고 성실한 자세가 매우 깊게 남았다." (홍명보)
"내겐 첫 한일전이었다. 세계에 뛰어드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한국은 정말 강했다." (모리야스)
"당시 일본은 새로운 강한 선수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예를 들어 라모스 선수가 1989년에 귀화하고 등장했다. 일본 축구가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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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통신 유튜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도하의 기적' 직전에 맞붙은 한일전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리그 방식으로 열렸다.
일본에 0-1로 져 탈락 위기에 놓였던 한국은 마지막 북한전에서 3-0으로 승리했다.
같은 시각 킥오프한 경기에서 일본이 이라크에 막판 골을 허용해 무승부에 그치면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본선행 티켓을 가져갔다.
한국엔 도하의 기적, 일본엔 도하의 비극이었다.
치열한 승부를 펼친 예선 기간, 한국 선수들로부터 '정'도 느꼈다고 모리야스 감독은 털어놨다.
"당시 한국 대표였던 노정윤 선수는 히로시마에서 나와 팀 동료였다. 한국은 국가대표팀 전담 셰프도 있었고, 예선 기간 내내 호텔에서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일본은 준비가 덜 돼서, 직접 반입한 일본식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노정윤 선수가 '이거로는 밥을 충분히 못 먹었을 거다'라며 김치를 건네줬고, 내가 받아와 일본 팀에도 나눠준 기억이 있다." (모리야스)
"일본은 1992년부터 성장 중이었다. 1993년 예선 당시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1994년 월드컵에는 한국이 나갔지만, 일본이 곧 월드컵에 나갈 것을 강하게 느꼈다."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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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6일 경기도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 홍명보 감독과 일본 모리야스 감독이 입장하고 있다. 2025.7.6 xanadu@yna.co.kr
◇ 81차례 한일전, 축구를 넘은 승부
81차례 열린 한일전의 전적은 한국 기준 42승 23무 16패다.
두 사령탑 모두 한일전에서만큼은 '축구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고 했다.
"축구를 넘어선 커다란 승부다. 양국 선수들이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준비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긴장감을 함께 느낀다. 세 경기가 인상 깊다. 1993년 도하에서 0-1로 진 경기, 1997년 9월 일본에서 열린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2-1로 이긴 경기, 그리고 감독으로서 2012년 런던 올림픽 3·4위전에서 승리한 경기다." (홍명보)
"내가 뛰진 않았지만,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이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한 경기가 인상 깊었다. 직접 원정 경기장(잠실종합운동장)에 가서 길거리에서 떡볶이 먹으며 경기를 지켜봤다. 일본이 월드컵에 가기 위해선, 늘 한국이라는 큰 벽을 넘어야 했는데 이때 일본이 승리했다. 런던 올림픽 3·4위전도 인상 깊었다. 언젠가 그런 승부를 A대표팀 무대에서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여전히 있다." (모리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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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국 축구 대표팀 홍명보 감독(왼쪽)과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지난 달 26일 일본 지바현 일본축구협회(JFA) 드림필드에서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2025.7.5 [교도통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우아한 홍명보", "헌신적인 플레이의 모리야스"
홍명보 감독과 모리야스 감독은 선수 시절 일본 J리그 무대에서 맞붙었다. 홍명보 감독은 1997년 벨마레 히라쓰카(현 쇼난 벨마레)에 입단하면서 J리그에 진출했고, 이후 가시와 레이솔로 옮겨 2001년까지 일본에서 뛰었다.
"홍명보 감독은 한마디로 우아했다. 볼을 다루는 자세가 좋고, 강하면서도 플레이가 정확했다. '지금 뭘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영리한 이미지였다. 당시 한국 선수들은 전반적으로 피지컬에서 앞서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스트라이커는 강하고 덩치가 크며 전진력이 있고, 윙어는 돌파력이 있으며 중원 선수들은 볼 탈취 능력까지 있었다. 수비수는 체격이 견고해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모리야스)
"모리야스 감독은 상대하기 정말 어려웠다. 무엇보다 엄청 많이 움직였다.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플레이했다. 당시 훌륭한 선수가 많았지만, 모리야스 감독님은 꼭 필요한 존재였고, 주장으로서 팀을 이끄는 리더이자 매우 능력 높은 선수였다."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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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6일 경기도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 홍명보 감독과 일본 모리야스 감독이 입장하고 있다. 2025.7.6 xanadu@yna.co.kr
◇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명감'
모리야스 감독은 2003년, 홍명보 감독은 2004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후 나란히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자국 대표팀 감독이라는 '정점'에서 다시 만났다.
두 지도자는 '헌신'과 '희생'을 대표팀 운영에서 늘 우선하는 가치라고 입을 모았다.
"기술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팀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팀을 위해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는지는 더 중요하다. 유럽의 강호들과 싸우기 위해선 '팀 파워'가 결정적인 요소다. 대중은 스타나 유명 선수, 인기 선수들을 좋아하지만, 결국 팀을 승리로 이끄는 건 선수 시절 모리야스 감독 같은 헌신적인 플레이어다." (홍명보)
"홍명보 감독의 생각과 거의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지만, 선수들에게 묻는 것은 항상 '팀을 위해, 동료를 위해, 일본을 위해 싸울 수 있는가'다. 그것이 뿌리가 되면서도, 함께 존중하며 '같되 같지 않게', 개성을 존중하며 싸움에 임하도록 하고 싶다. 홍명보 감독은 일본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팀을 위해 싸우는 모습까지 모두 보여줬기에 주장으로 임명됐다. 그런 선수들이 많이 자라줬으면 좋겠다." (모리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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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국 축구 대표팀 홍명보 감독(왼쪽)과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지난 달 26일 일본 지바현 일본축구협회(JFA) 드림필드에서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2025.7.5 [교도통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1년 앞으로 다가온 북중미 월드컵…"꿈은 크게"
약 1년 뒤인 2026년 6월,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의 공동 개최로 월드컵이 열린다. 한국엔 12번째, 일본엔 8번째 월드컵이다.
한국은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조했고, 이후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와 2022년 카타르 대회에서 16강에 올랐다.
일본은 한일 대회와 남아공 대회, 2018년 러시아 대회와 카타르 대회에서 16강에 갔다.
양국 모두에 8강 이상의 성적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다.
내년에는 본선 출전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돼 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터다.
"꿈은 크게,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싸워가고 있다. 물론 '무슨 망상 같은 소리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 경기 한 경기 싸워보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우리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까지 가준 덕분이다. 그 모습을 보고 '일본도 반드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뿌리 깊어졌다. 경쟁하며 아시아를 이끌 동료인 한국과 결승 무대에서 맞붙는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모리야스)
"한국이 지금까지 가 보지 못한 곳까지 가는 게 목표이자 내 사명이다. 조직적, 정신적으로 강한 팀을 만드는 것 역시 과제다. 그 목표를 향해 지금도, 매일 노력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월드컵 결승 무대에서 언젠가 맞붙는 모습을 저도 정말 보고 싶고, 반드시 실현하고 싶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전에 일본에서 (당시 일본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세키즈카 다카시 감독과 식사를 했다. 올림픽 가서 잘하자, 상대국 정보도 주고받자고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3·4위전에서 맞대결했다. 그런 날이 다시 빨리 오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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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국 축구 대표팀 홍명보 감독(왼쪽)과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지난 달 26일 일본 지바현 일본축구협회(JFA) 드림필드에서 열린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특별 대담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5.7.5 [교도통신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한국과 일본은 "동료이자 라이벌"
한국과 일본 축구는 늘 뜨겁게 부딪친 라이벌이지만, 길게 보면 함께 성장해온 관계다.
두 감독은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아껴온 양국 축구계의 상호 인식이 사회 전반에도 퍼져나가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국 축구는 동료이자 라이벌이다. 인접 국가인 만큼 정보도 공유하며 함께 레벨업할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한다. 아시아를 이끌어 갈 동료다. 세계에서 승리하기 위해 앞으로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다음 세대로 우리가 해온 일이 연결될 수 있도록 홍명보 감독과 협력해 나가고 싶다." (모리야스)
"일본에서 경험은 나를 축구인으로서 성장시켜 줬다. 전술적이고 기술적으로 섬세하지 않으면 일본에서는 뛸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한국 축구에도 일본의 성장이 동기를 자극했다. 한일 관계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1998년 월드컵 예선 홈 경기에서 '함께 프랑스로 가자'는 현수막이 (이미 월드컵 진출을 확정한) 한국 서포터석에 걸렸다. 한일 월드컵에서는 일본 팬들이 한국을 응원해줬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다시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 (홍명보)
ah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10일 13시23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