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칼럽]여론 착시 가져오는 ‘우쭈쭈 정치’의 함정

1 week ago 8

국토1차관 사퇴는 ‘유튜브 공화국’ 초상화
친여 유튜브서 우쭈쭈식 인터뷰하다 실언
10·15 대책 파장에도 與 지지 되레 상승?
중도-20대 응답률 낮아, 민심 오독 말아야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지난 2주는 10·15 부동산 대책의 후폭풍이 대한민국을 집어삼켰다. 봉급생활자들이 주택이나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면 은퇴 후 노후자금으로 쓰는 것은 일반적인 ‘모기지’ 개념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은 대출받아 집을 사거나 여러 사정으로 전세를 준 사람들을 싸잡아 잠재적 ‘투기꾼’으로 규정하는 정책을 홍보하려다, 결국 자신이 만든 규제가 타깃으로 삼은 ‘경제행위’를 부지런히 한 것이 알려져 사퇴했다.

이 모든 이상한 상황의 시작은 유튜브였다. 왜 유튜브였을까? 해외에서는 정책 책임자가 기성 언론이 아닌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정책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를 보기 힘들다. 균형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전통 언론보다 자신을 ‘우쭈쭈’해 줄 유튜브가 더 좋은 홍보 채널이라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이 전 차관이 가령 공영방송 KBS의 뉴스 프로그램을 선택했다면, 설사 친여(親與) 성향의 진행자라도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가치를 위해 세간의 우려를 대변하는 질문 한두 개쯤은 던졌을 것이다. 반면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친여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지난 2주 동안 10·15 대책에 대한 얘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문제는 유튜브의 ‘우쭈쭈’에 도취되다 보면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하게 되고, 자칫 논란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권은 야권보다 유튜브 활용에 훨씬 적극적이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22대 국회의원 중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비율은 더불어민주당(72.0%)이 국민의힘(36.7%)의 거의 두 배였다. 전체는 61.3%였다. 페이스북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83.2% 대 63.3%로 민주당이 높긴 했지만, 유튜브보다는 격차가 작다. 여당이 얼마나 유튜브를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친여 성향 유튜버가 운영하는 ‘딴지일보’ 게시판에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대법관 증원과 재판소원제 도입 등의 적극 추진 의지를 다지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소속 의원들의 유튜브 평균 구독자 수는 민주당(4.6만 명)이 국민의힘(3.3만 명)을 앞섰다. 정 대표(70만 명), 민주당 김병주 최고위원(51.6만 명) 순으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했다. 평균 게시물 수도 민주당 595.4건 대 국민의힘 399.1건으로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압도했다. 정 대표(6000건), 민주당 서영교 의원(4900건)이 1, 2위를 차지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지만, ‘개딸’로 대표되는 강성 여당 지지층이 야당보다 훨씬 많다 보니 여당 의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유튜브 활용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한 것은 2주 동안 10·15 대책의 후폭풍이 온 나라를 휩쓴 것 같지만, 정작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변화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의 21∼23일 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 지지율은 56%(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로 전주보다 오히려 2%포인트 상승했다. 민주당도 4%포인트 오른 43%였다. 이는 전통적인 정치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상충된다. 물론 국민들이 10·15 대책 후폭풍보다 여전히 ‘내란 척결’을 더 중요한 사안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정부 여당이 이 전 차관을 ‘야반사퇴’시킨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여론조사 응답률이 낮다 보니, 20대를 포함한 정치 혐오가 심한 중도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듯하다. 즉, 2022년 21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찍었거나 투표하지 않았다가, 6월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에게 투표한 진정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에 많이 잡히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무조건적 지지층과 반대층만 참여하는 여론조사는 여론의 추이를 제대로 보여주기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에는 잘 잡히지 않는 바로 이 ‘중도’가 지방선거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실에서 이 전 차관을 하차시킨 배경일 것이다. 유튜브 맹신의 결과는 윤 전 대통령의 몰락을 통해 분명히 봤다. 윤 전 대통령이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을 즐겨 시청하다 ‘과대망상’에 빠져 비상계엄 선포라는 황당한 선택을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세계 정치사에서 최초로 ‘유튜브 과몰입으로 망한 정치지도자’로 남게 됐다. 이 전 차관의 사퇴를 보며, 유튜브가 제공하는 ‘우쭈쭈’의 유혹과 중도 여론을 감추는 마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락의 길로 빠지는 시대가 시작됐다는 우려가 들었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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