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펼쳐 든 아침 신문 속 사진 하나가 말을 걸었다. ‘대한민국 노인 빈곤의 실상’이란 타이틀이 붙은 사진 안에는 몸집의 얼추 다섯 배는 될 법한 폐지 더미를 고철 손수레에 싣고 가는 어르신이 서 계셨다. 인도가 아니라 차도에.
내 시선을 붙든 건 ‘노인 빈곤’이란 네 글자로 뭉뚱그린 현상이 아니라 발밑의 현실이었다. 질주하는 자동차의 행렬을 피해 차도 가장자리를 걷는 어르신은 위태로워 보였다. 사진 너머로 전해진 우려는 실존이었다. 폐지 수집 활동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어르신은 100명 중 6명에 달했다.
어르신은 왜 그 위험천만한 차도에 서 계실까? 이유는 3만원에 있었다. 국내에서 흔히 쓰이는 고철 손수레의 너비는 1.5m다. 그러나 현행법은 폭 1m가 넘는 손수레를 ‘차’로 분류한다. 기존 손수레가 인도로 올라가는 순간 하루 일당에 맞먹는 3만원을 과태료로 내야 한다. 그렇다. 3만원은 어르신의 하루 생계비가 됐다 벌금이 되기도 하고, 목숨값이 되기도 했다.
본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손수레의 폭이란 디테일을 간과한 결과가 ‘3만원의 모순’을 낳았다. 무릇 우리가 살아가는 보통의 하루, 평범한 일상을 좌우하는 건 의외로 매우 사소한 것들이다.
나는 현장을 찾아가 상황을 점검했다. 마침 서울은 폭이 1m가 넘지 않는 ‘경량 손수레’를 보급 중으로 이를 늘리도록 주문했다. 법의 규격 안에 들어오는 경량 손수레를 이용하면 실을 수 있는 폐지 양은 줄지만 인도로 다닐 수 있다. 보행자와의 충돌 위험도 낮아진다. 정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해답은 될 수 있다. 또 깜깜한 밤일수록 사고는 더욱 빈번했다. 야광조끼, 손수레 부착 조명 등의 안전 물품 지원도 재차 주문했다.
최근 서울은 ‘규제 철폐’ 움직임이 한창이다. 새삼스러우면서도 반갑다. 일상과 민생을 되살릴 모멘텀이 필요한 지금, 규제 철폐가 혁신의 불쏘시개가 돼주리라는 기대 때문에 반갑다. 그럼에도 새삼스럽다고 느끼는 건 규제 혁신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의 과제인 까닭이다. 보수와 진보 가리지 않고 규제 혁파를 외쳐왔다. 그러나 그 창대한 시작은 매번 미약하게 끝났다.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과 같은 규제 폐해를 알리는 화려한 구호만 전리품처럼 남긴 채.
2025년의 규제 개혁이 이전과 다른 결말을 맞으려면 출발점부터 바꿔야 한다. 현장이 먼저다. 규제를 해제할지, 놔둘지, 바꿀지는 그다음이다. 서울시의회가 규제 개혁에 앞서 ‘현장 민원’을 위시한 조직개편부터 시행하고 시민 제안을 통해 삐쭉 솟은 ‘일상 속 규제’를 솎아낼 ‘규제 없소’ 프로젝트에 착수한 이유다.
비가 온다는 사람과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가 할 일은 다른 게 아니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봐야 뭐든 시작된다. 바로 현장에 디테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