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이후 국제대회 3승…"'몰카'인가 싶을 정도로 얼떨떨"
이미지 확대
[대한펜싱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파리 올림픽 이후 온 세상이 제게 '몰래카메라'를 하는 건가 싶을 정도의 상황이 이어져서 계속 얼떨떨해요."
이번 시즌 상승세를 타 마침내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한 한국 여자 펜싱의 '신성' 전하영(23·서울특별시청)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시대를 조심스럽지만, 기꺼이 맞이하고 있다.
전하영은 이달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25 SK텔레콤 서울 사브르 그랑프리에서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뒤 최신 세계랭킹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7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하영은 "친구들을 만나러 잠시 (고향인) 대전에 들렀을 때 랭킹이 업데이트된 것을 확인했다. 친구들에게 '나 1등 됐어'라고 말한 뒤 조촐한 파티로 자축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1등이네' 생각만 했는데, 진천 선수촌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갑자기 실감이 나기 시작하더라"라면서 "운전할 때 원래 조용히 운전만 하는 스타일인데, 매우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신나게 부르면서 왔다"며 웃었다.
이미지 확대
[대한펜싱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파리 올림픽 때 여자 사브르 대표팀의 막내이면서도 '에이스'의 상징인 단체전 마지막 라운드를 도맡을 정도로 큰 기대를 받는 유망주였던 전하영은 이번 시즌 완전히 물이 올랐다.
올림픽 이후 국내 대회부터 대통령배와 국가대표 선발대회 연속 우승으로 심상치 않더니, 2024-2025시즌 첫 월드컵인 지난해 11월 알제리 오랑 대회에서 국제대회 개인전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프랑스 오를레앙 그랑프리와 최근 안방에서 열린 SKT 그랑프리까지 금메달 행진을 펼쳤다.
펜싱 국제대회에서 한 시즌 개인전 3회 우승은 웬만한 최정상급 선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전하영은 "다른 선수들을 보면 보통 8강 정도에서 노크하다가 동메달 정도를 따고, 그러면서 다른 메달도 따게 되는 경우가 많던데, 저는 덜컥 금메달을 연이어 따 버렸다. 제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세상이 저를 '몰카' 하나 싶기도 하고, 지금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가 '저절로' 온 것은 아니다. 키 170㎝를 훌쩍 넘는 왼손 펜서로, 신체적 강점은 충분했던 그는 파리 올림픽 준비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닦았다.
이미지 확대
[대한펜싱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하영은 "저는 원래 크고 긴 동작을 많이 하는 선수였는데, 올림픽 전부터 여자 선수들이 동작을 더 짧고 간결하게 하는 쪽으로 추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올림픽을 준비할 때 영상을 많이 보며 제가 잘 못하던 잔발 동작 등을 무척 많이 연습했다"면서 "억지로라도 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눈이 떠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에 올림픽을 비롯한 큰 경기를 연이어 치르면서 쌓인 자신감이 곁들여져 순식간에 세계 1위를 꿰찼다.
그는 "이번 그랑프리를 앞두고는 4월에 대회가 없어서 진천에서 오롯이 펜싱에만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욕심이 더 커지더라. 큰 부담감과 긴장감으로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근육통이 올 정도였는데,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SKT 그랑프리 경기를 계속 돌려 보고 있다는 그는 김정미(안산시청)와의 결승전(15-13 승)보다는 사라 누차(프랑스)와의 준결승전(15-10 승)을 더 많이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하영은 "그 선수(누차)를 상대로 이전엔 잘 뛰어 본 적이 없었다. 콩트라타크(역습)에 많이 당해서 공격 성공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이 없었는데, 처음 이겨봐서 개인적으론 기억에 더 남는다"면서 "소속팀 코치님과 (은퇴한 전 국가대표) 윤지수 언니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확대
[대한펜싱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에서 열리는 가장 큰 펜싱 국제대회인 SKT 그랑프리에서 사상 첫 '한국 선수 결승 맞대결'의 주인공도 된 그는 "결승 상대였던 정미 언니를 비롯해 대표팀에서 또래 선수들이 같이 치고 올라오면서 저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앞으로 같이 해나갈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 좋다"고 의미를 뒀다.
최고의 시즌을 보내는 전하영은 이달 말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시즌 마지막 월드컵 이후 6월 아시아선수권대회, 7월 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 세계선수권대회까지 굵직한 대회를 연이어 준비한다.
그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다가오는 대회들을 하던 대로 차근차근 치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이번 시즌 시작부터 좋았으니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하영은 "전반을 잘하고 나서 후반에 들어가 연속 점수를 주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는데, 이기고 있을 때 안주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면서 "기술적으로 잘하는 부분을 유지하면서 더 단단한 경기력을 만들고자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songa@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07일 08시3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