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감독 "여성 노인 킬러라니…불가능에 도전하듯 찍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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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킬러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연출한 민규동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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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

[NEW·수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액션 연출 경험이 부족한 감독과 액션 연기를 하기에는 나이가 많이 든 배우. 가장 불안정한 조합이었는데, 둘이 만나서는 일종의 화학 작용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파과' 속 주인공 조각(이혜영 분)은 여느 킬러 영화 주인공과는 다르다.

한때는 혼자서 스물여덟명의 장정을 단번에 해치우기도 했던 전설적인 킬러지만, 이젠 수전증으로 칼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관절 이곳저곳이 삐걱거리는 통에 격한 동작을 할 때마다 신음이 절로 나오는 예순을 훌쩍 넘긴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나이 들고 쇠약해진 여자 킬러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 영화 '파과'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은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어쩌면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남자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킬러 영화에 노인 여성이 주인공이 된다면, 과연 관객들이 이를 믿어주고 보러올까 싶은 우려도 있었고, 영화를 찍고 만드는 과정 자체도 너무 고되다 보니 끊임없이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 갈등했었다"고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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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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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가 2013년 출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과감한 각색을 통해 조각과 투우의 서사에 초점을 맞췄다. 조각의 서사와 내면의 고민을 부각한 소설과 달리 영화는 조각과 젊은 남자 킬러 투우의 대결을 긴장감 넘치게 펼쳐낸다.

민 감독은 "정말 다양한 시나리오를 써서 비교하며 고민했었다"며 "과거 서사를 아예 덜어낸 버전, 조각의 일인칭 시점에서 끌고 가는 버전, 강 선생을 빼고 진행하는 버전 등 여러 개가 있었는데, 결국에는 조각과 투우의 감정이 교차하는 액션 누아르로 돌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좋아할 법한 액션의 쾌감을 강조한 상업 영화로서의 미덕에 집중하되, 어떻게든 새로운 액션으로 관객들의 심장을 흔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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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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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로 63세인 이혜영과 강도 높은 액션 장면을 촬영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벽에 튄 탄피가 가스총에 붙어 불이 나기도 했었고, 이혜영은 촬영하다가 갈비뼈 골절을 당하기도 했었다.

민 감독은 "선배님과 첫 리딩할 때가 기억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무릎을 짚고 '아이고' 소리를 내시는 걸 보면서 과연 강도 높은 액션 연기를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선배님은 다쳐가면서도 일어나셨고, 촬영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강해지셨다"고 돌아봤다.

"본인 몸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달려가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라톤 뛰는 사람들이 일정 한계를 넘어서면 자기가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 달리잖아요. '컷'을 외치고 나면 '정말 쓰러지신 게 아닐까?', 저 자리에서 일어나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하셨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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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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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영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데뷔해 '김종욱 찾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내 아내의 모든 것', '간신', '허스토리' 등을 만든 민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감독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았다"고 짚었다.

그는 마지막 촬영을 마친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난다며 "촬영이 끝나고, 저도 모르게 이혜영 선배님에게 달려서 끌어안고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 될 이유는 너무 많고, 잘 될 이유는 너무 적은 작품이었는데,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지막 촬영이 끝나자 '죽지 않고 살아났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나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밖에 나가서 스스로를 감독이라고 소개하지 않았어요. 근데 이번 영화 찍고 나서는, '그래, 나 영화감독인 것 같아'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갓 태어난 아이가 울 듯, 그렇게 울음이 나왔던 것 같아요."

coup@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4월29일 18시07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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