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임우선]미국에 돌아온 트럼프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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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뉴욕 특파원

임우선 뉴욕 특파원
‘10일 내에 16.10달러(약 2만2910원)를 내세요. 기한을 넘기면 9.9%의 수수료가 추가 부과됩니다.’

얼마 전 한 국제배송회사로부터 편지가 왔다. 열어보니 배송받은 물건에 대해 관세를 내라는 고지서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달 회사가 한국에서 추가 제작해 보내준 명함 두 통에 대한 관세를 내라는 것이었다. 명함 가격은 불과 2만 원(14.34달러)이었는데, 여기에 15%의 관세를 부과해 2.10달러를 매긴 뒤 통관 처리 수수료 14달러를 더해 물건 값보다도 비싼 수수료를 청구한 것이었다.

‘내 이름이 적힌 명함에 대해서도 관세를 물리다니…’ 혼잣말이 나왔다. 새삼 외국에서 들어오는 거의 모든 것을 적대시하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있음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커지는 ‘관세 스트레스’

요즘 미국인들은 이처럼 생활 곳곳에서 ‘관세 스트레스’를 마주하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추가 비용이 ‘0달러’였던 800달러 이하 해외 소포에 대해 적게는 수십 달러, 많게는 100달러 이상 추가 비용이 붙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은 평소 좋아하는 유럽 브랜드에서 셔츠를 몇 벌 주문하려다 결국 포기했다. 최종 결제 단계에서 셔츠 한 벌 값에 준할 만큼 비싼 관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K뷰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한 미국 소비자는 “올리브영에서 한국 화장품을 즐겨 사는데 요즘은 살 때마다 관세 추가 결제가 뜬다”며 “누구를 위한 관세인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결제 단계에서 관세를 알게 되는 건 투명한 편이다. 많은 경우 생활 속 물품들은 소리 소문 없이 값이 올라 있어서다. 얼마 전 마트에 가니 6.99달러였던 베트남 요리용 소스가 돌연 9.99달러가 돼 있었다. 지난해 겨울 600달러대였던 한 유럽 브랜드의 옷은 올해 같은 모델이 800달러대에 출시됐다.

각종 제품 생산을 위해 기업과 기업 간에 이뤄지는 수많은 자재와 부품 거래 등도 미국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로이터 통신은 최신 데이터를 인용해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이 관세의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또 “관세가 발효되고 처음 몇 달은 미국 기업들이 그 비용을 부담하며 감내해 왔지만 이젠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고 가격이 더 인상될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했다. 제품 넘어 사람도 막는 미국

미국인들은 그동안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의 중심부에 살며, 이로 인한 혜택을 충분히 누려 왔다. 이들에게 ‘외국산 제품 구입에 페널티를 주는 미국’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세상이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갈수록 해외의 제품과 기술을 경험하기 어려운 사회로 바뀌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의 미국은 제품을 넘어 사람과 아이디어의 교류까지 막으려 한다는 점이다. 요즘 미국은 불법 체류자만 막는 게 아니다.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우수한 인재들까지도 해외에서 오는 걸 되도록 막는 분위기다.

올해 5월 하버드대를 공격하며 처음으로 “유학생 비율이 31%인 건 너무 많다. 15%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구체적인 ‘제한선’을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등 9개 미국 명문대에 ‘학부생 중 유학생을 최대 15%로 제한하고 한 국가 출신 학생이 최대 5%를 넘지 않게 하라’는 협약을 요구했다.

그간 미국이 특별한 나라였던 이유는 세계 최고의 제품과 기술, 또 사람과 아이디어가 가장 자유롭게 오가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과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도 ‘고인 물은 썩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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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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