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를 지켜보는 외국인으로서 조금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입장료는 무료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22유로, 도쿄국립박물관이 1000엔의 입장료를 받는 것과 크게 비교가 된다. 국고에 상당 부분 의존해 박물관 운영을 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순식간에 몰리다니…. 안전에 대한 문제가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쳤다. 또 박물관 직원들이 과중된 업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주차장이나 식당가 등 주변 편의시설은 충분히 늘어난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을지 등이 걱정됐다. 실제로 올 8월 국립중앙박물관의 일평균 관람객은 3만 명에 달했다. 이는 2005년 개관 당시 설계한 최대 수용 인원 1만8000명을 훌쩍 넘겨버린 상태라고 한다.
물론 예산 확충을 위해 무작정 입장료를 올려야 한다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무료 입장은 한국 사회가 이룬 중요한 문화적 성취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득 수준이나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한국의 풍부한 역사와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정책은 문화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이다. 어린이부터 어르신, 서울 시민부터 지방 방문객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박물관의 문을 드나들며 학습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분명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 정책이며, 한국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당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만약 불가피하게 입장료 정책의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면, 그 충격을 최소화하고 문화 접근성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의 일부 박물관처럼 특정 시간대에만 무료 입장을 허용하는 ‘해피 아워’ 형태의 정책을 도입하면 어떨까? 이는 방문객 분산을 유도하는 동시에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무료로 박물관을 이용할 기회를 제공한다.또 다른 아이디어는 포르투갈의 렐루 서점처럼 우선 입장이 가능한 높은 가격의 티켓을 따로 만드는 것이다. 그 대신 이 티켓에 그 추가 가격에 상응하는 가치의 선물(박물관 숍 할인 쿠폰 등)을 포함하는 건 어떨까. 굿즈 판매 수익을 높이면서도 입장료 지불을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닌, 박물관 경험의 일부로서 부가 가치를 얻는 과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연간 후원 회원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거나, 방문객들의 자발적 기부를 늘릴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 역시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으면서도 접근성을 보장하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너무 저렴하면 문화의 가치가 평가절하될 수 있고, 너무 비싸면 문화 향유의 문턱이 높아진다. 이 딜레마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한국만의 특별한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박물관 앞의 긴 줄은 한국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반가운 신호다. 전통과 현대, 로컬과 글로벌이 만나는 이 특별한 순간에 한국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지키면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정부와 전문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면 한국의 문화 정책은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이러한 문화적 토양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전 세계를 매료시킬 뛰어난 작품이나 인물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박물관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단순한 전시 관람이 아닌 한국 문화와의 만남이다. 이 소중한 만남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그리고 모두에게 열려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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