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역대 최대 규모 R&D 예산, 과학기술 생태계의 새로운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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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국 한국화학연구원 원장이영국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35조3000억원. 2026년도 대한민국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규모를 접했을 때, 과학 기술계에 몸담은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뛰었다. 단순히 역대 최대 규모라는 수치적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 과학기술 생태계에 가져올 근본적 변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번 예산안으로 그동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수행했던 성과 위주 단기과제 연구 환경 개선과 중장기적 관점의 기초 원천 연구 확대 필요성 등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자들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에 안정적으로 매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출연연의 입장에서 이번 예산안 핵심은 5000억원 규모의 전략연구사업 신설이며, 본 사업은 연구과제중심제도(PBS) 시스템 개선과 함께 출연연 정체성을 회복하고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출연연은 이제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미래 먹거리 산업 창출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민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기초 원천 연구와 국가전략 기술 개발에 전념하며,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특히 예산안에서 제시된 '풀스택 연구개발 접근법'은 출연연 전문성을 살린 차별화된 인공지능(AI) 융합 연구를 핵심으로 하며, 매우 시의적절한 방향으로 평가받는다. 예를 들어 한국화학연구원이라면 AI를 활용한 신소재 설계나 화학 공정 최적화에 특화하고, 다른 연구원은 AI 기반 스마트 제조 기술에 집중하는 식이다. 중복된 AI 연구보다는 각 기관 고유 역량과 AI 융합을 통한 차별화된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역에 있는 출연연에는 특별한 기회가 열렸다. 해당 지역 산업 생태계와 긴밀히 연계해 특화된 혁신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의 화학 산업, 포항의 철강 산업, 창원의 기계 산업과 각각 출연연이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혁신 생태계 구축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 기술이전을 넘어 지역 기업과의 공동연구, 인력 교류, 창업 지원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이어야 한다.

'최우수 연구자 인센티브' 제도는 적극 환영할 만한 변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젊은 연구자들이 실패를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와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연구자들의 사명감을 증폭시키고 이에 대한 합당한 인센티브를 제시할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약효'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역대 최대 규모 R&D 예산 증액과 함께 출연연 역할과 책임도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국가 차원의 장기 연구과제를 선도하는 중추 기관으로서 AI, 에너지, 양자컴퓨팅 등 미래 핵심 분야에서 독자적 기술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또 산학연 협력 허브로서 연구 성과 사회적 확산을 주도하고, 실험실 창업부터 사업화까지 전 주기적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차세대 과학기술 리더 양성과 글로벌 우수 인재 유치 거점 역할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약속된 지금, 변화 주체는 바로 우리 과학 기술계 전체다. 출연연은 원천 연구에, 대학은 창의적 인재 양성과 기초연구에, 기업은 연구성과 상용화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특히 화학, IT, 바이오, 기계, 에너지 등 모든 분야 출연연이 각각 전문성을 발휘해 시너지를 창출할 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

35조원이라는 역사적 투자가 대한민국을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시키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은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닌, 우리 모두의 각고의 노력과 헌신이 뒷받침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과학 기술계가 하나로 뭉쳐 이 소중한 기회를 반드시 성공으로 끌어내야 할 역사적 순간이다.

이영국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leeyoung@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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