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에 대한 명상[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61〉

4 days ago 1

침대 건너편에 커튼들이가만히 몸을 늘어뜨리고 있다.그들은 매달린 채, 밥을 먹을 거다.물구나무선 채로, 잠을 잘 거다.울울한 침엽수림의 기억이 몸에 밴 경건한 자세.그게 비굴이 아님을 이해한다.커튼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바라보는 저녁.침묵이라는 덕목을 새삼 일깨워주는 것들.스탠드 불빛도 조용하고, 그 옆 전화기마저 통 말이 없다.침묵의 견고한 연대는 어둠 가운데 비로소 온기를 발한다.진정한 묵언은 이제 막 태어나고 있음을 증명하듯.가끔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면서 그 뒤에 숨고는 한다.―엄원태(1955∼ )일단 매달면 한곳에서 쥐 죽은 듯 매달려 있는 것, 자주 세탁하게 되지 않고 종종 잊어버리는 것, 아파서 침대에 앓아 누울 때나 비스듬히 쳐다보게 되는 것은? 바로 커튼이다. 화자는 아마도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커튼을 본다. 커튼은 곧 화자의 몸이다. “커튼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바라보는 저녁”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아플 때는 누구나 혼자다. 기쁨과 슬픔은 가족이나 지인과 나눌 수 있지만 아픔은 그럴 수 없다. 누구도 대신 아파줄 수 없기에 아픈 자는 외로운 자다. 곁에 내려앉는 것은 “침묵의 견고한 연대”뿐이다. 고통이 만성이 되면 소리가 의미를 잃기 때문이리라. 묵묵히 참는 것, “진정한 묵언”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다만 시간이 흐르도록 기다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다. 화자는 침대에 누워 매달린 채로 커튼 속으로 들어간다. 커튼이 되고 커튼의 생활을 살아본다. 커튼이 유일하게 숨겨주는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슬픈 아름다움이 된다. 아름다운 슬픔이 아니라. 박연준 시인©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