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의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일반 지주회사 소속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청이 나왔다. 일반 지주사는 물론 금융권에서 이런 제안을 한 건 현행 금산분리 규제 아래서는 은행 자금이 벤처 생태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좁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에 부동산이 아닌 기업과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생산적 금융을 요구하지만, 은행 자금이 벤처 생태계로 직접 흘러드는 환경 자체가 충분히 조성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일본과 비교하면 상황은 더 극명하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에서 투자 건수가 많은 10대 CVC 가운데 일본 회사는 MUFJ캐피털, SMBC벤처캐피털, 미즈호캐피털 등 세 곳이었다. 이들은 각각 미쓰비시UFJ금융그룹, 스미토모미쓰이금융그룹, 미즈호파이낸셜그룹 등 일본 3대 금융그룹 산하 CVC다. 이 가운데 MUFJ캐피털, SMBC벤처캐피털은 각각 15건의 투자를 진행하며 미국의 구글벤처스(17건) 다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미즈호캐피털은 11건 투자로 공동 4위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미국 CVC다. 은행계 CVC가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면서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의 몸집이 커지고 있다는 부러움의 목소리가 국내 업계에서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국내 은행이 벤처 투자에 과감히 투자하기 어려운 건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사실상 사금고로 활용하며 부실을 키운 폐해가 드러나자 금융과 산업의 결합을 원천 차단하는 규제가 자리 잡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산분리 완화를 일부 추진했지만,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다시 원상 복귀됐다.
금융당국은 위기 재발 방지를 명분으로 규제를 붙들었고, 정치권은 재벌 견제를 내세웠다. 그러는 사이 한국에서 금산분리는 금과옥조가 됐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어쩌면 2021년 일반 지주사에 제한적으로 CVC 설립이 허용된 건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당시 기억을 돌아보면 그 기적을 현실화한 건 정부와 여당의 의지였다. 상법·공정거래법 등 개정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거래 성격이 강했지만, 어쨌든 그 결과 벤처 생태계에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정치적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생산적 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금산분리 원칙의 현실적 조정이 필요하다. 은행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먼저 은행 자금이 혁신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가로막는 규제가 무엇인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