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억대 연봉 은행원들의 '배부른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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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억대 연봉 은행원들의 '배부른 총파업'

주 4.5일제 도입, 임금 5% 인상, 정년 연장…. 국내 은행원을 대표하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산별중앙교섭에서 요구한 내용이다. 사용자 측이 “주 4.5일제에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고 고객 서비스에 차질이 예상된다”며 난색을 보이자 금융노조는 파업으로 응답했다. 노조는 오는 26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이달 1일 조합원 찬반 투표에선 찬성률 94.98%로 파업안이 가결됐다

평균 1억2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은행원들이 파업에 나서는 것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가 많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 직원은 올해 상반기 역대 최고액인 6350만원의 평균 급여를 받았다. 삼성전자(6000만원), 현대자동차(4500만원) 등 국내 간판 기업 급여보다 많다.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임금 인상 현황 분석’을 봐도 17개 업종 가운데 금융·보험업은 월평균 임금 총액(805만1000원)과 인상률(7.2%)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은행권에 주 4.5일제가 도입되면 가장 타격받는 건 금융 소비자다. 은행 대면 영업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소비자가 불편을 겪는다. 금융노조는 대안으로 월~목요일 근무 시간을 30분씩 늦추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주 4.5일제가 시행되면 점포 운영 시간을 30분 늘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영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포스텍과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이 실시한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은행 영업점 대기 시간이 가장 긴 요일은 금요일이었다. 시간대별로는 오후 2시 대기 고객(8.5명)이 가장 많았다. 금요일 오후에 영업점을 닫으면 주말 직전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많은 고객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금융노조는 주 4.5일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저출생 극복’을 주장한다. 장시간 노동이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주 4.5일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가정 양립을 위해서라면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유연근무제 확대 등을 주장하는 게 합리적이다. 더구나 금융노조는 4.5일제를 도입하면서도 임금 삭감은 거론하지 않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임금 삭감 논의도 없이 제도만 요구한다면 청년 채용 축소와 신규 일자리 위축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금융노조 파업을 보면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한 대사가 겹쳐진다.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명분이. 건달 세계에도 룰이라는 게 있는데.” 명분 없는 투쟁은 역풍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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