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과열되는 성분명 처방 갈등

1 month ago 13

[취재수첩] 과열되는 성분명 처방 갈등

“직역 간 처방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비치면 국민은 회의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 수석전문위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대한약사회 주최로 열린 ‘성분명 처방 한국형 모델 도입’ 토론회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성분명 처방 도입을 놓고 약사단체와 의사단체 간 갈등이 격화하자 정책 도입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발언이었다.

같은 당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의원은 지난 2일 품절 의약품 대체 방안으로 성분명 처방을 허용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하는 약사법·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처방전에서 약품 상표명 대신 성분명을 기재하면, 약사가 동일 성분·함량의 의약품을 조제하는 제도다. 예컨대 ‘타이레놀’ 대신 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처방하는 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국정과제에 수급 불안정 의약품에 대한 성분명 처방 도입을 포함했다.

직역 간 시각차는 뚜렷하다. 약사회는 토론회에서 성분명 처방이 복제약(제네릭) 사용 확대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불법 리베이트를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환자들이 복용하는 약 성분을 정확히 알게 해 안전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각 국회 앞 맞불 시위에 나선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동일 성분이라도 약제마다 약동학적 특성이 다르다”며 “성분명 처방은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성분명 처방을 둘러싼 의·약사 간 소모전은 20년째 반복돼 왔다. 단체 간 고소로 번진 사례도 있다. 2022년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 당시 서울시약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를 비판하며 ‘수준 이하의 성명’ ‘밑도 끝도 없는 막장 수식어’ 등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임현택 당시 소아청소년의사회장은 권영희 당시 서울시약사회장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양측 갈등이 다시 격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의사단체는 2000년 이후 유지돼 온 ‘의약 분업’ 폐지까지 거론한다. 일부 지역의사회는 총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참석자가 “토론회 분위기가 투쟁이나 궐기대회 같았다”고 지적할 만큼 약사단체도 흥분된 분위기다.

이 때문에 ‘결국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온다. 결국 성분명 처방을 국정과제로 내건 정부가 갈등 조정에 나서야 할 일이다. 지난해 전공의 파업 같은 사태가 또다시 발생하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환자들이 보게 된다. 국민 건강을 좌우할 제도 도입 과정이 직역 간 힘겨루기의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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