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타바이러스

4 hours ago 2

[천자칼럼] 한타바이러스

유엔군과 북한군의 처절한 고지전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철의 삼각지대’ 한탄강 유역(철원~연천) 중부 전선에 주둔하던 유엔군 병사 사이에 정체 모를 전염병이 퍼졌다. 고열·오한에 붉은 반점이 온몸에 나타나고, 신부전과 혈뇨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속출했다. 당시 유엔군 병사 3000명 이상이 감염됐고 이 중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국방부는 러시아의 생화학 무기 공격을 의심하며 이 지역에 역학 조사관들을 급파했지만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 전쟁이 종결되고도 이 전염병은 특정 병명이 아니라 ‘한국형 출혈열’이란 일반 명사로 기록됐다.

이 미스터리는 이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한국 미생물학자가 풀었다. 이호왕 고려대 의대 교수는 1976년 한탄강 일대에 서식하던 등줄쥐에서 원인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분리했다. 이 교수는 바이러스가 발견된 한탄강의 이름을 따 이를 ‘한탄바이러스(Hantaan virus)’라고 명명했다. 이후 같은 계통에 속하는 바이러스군을 통칭해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라고 부르게 됐다.

이 전염병은 설치류의 배설물·타액에 들어있는 바이러스가 먼지와 함께 공중에 떠다니다가 사람 호흡기로 들어와 감염된다.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은 낮지만 남미 지역의 ‘안데스 변종 바이러스’는 드물게 사람 간 전파 사례도 보고된다.

지난달 1일 아르헨티나를 떠나 남극, 아프리카, 남미를 운항하던 네덜란드 국적 호화 크루즈에서 승객 8명이 잇달아 한타바이러스 감염 증상을 나타냈고 이 중 3명이 숨졌다. 추가 감염 가능성을 우려하는 주변국의 입항 거부로 23개국에서 모인 승객과 승무원 등 149명이 한 달 넘게 대서양에 고립돼 있다고 한다.

이번 집단 감염의 원인은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이 있는 안데스 바이러스 계통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세계보건기구(WHO)는 “현 단계에선 공중보건 위험은 낮다”고 했다. 지난 3일 중간 기착지인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에서 하선한 23명에 대한 추적 조사가 진행 중이다. 팬데믹의 악몽이 재연되지 않도록 국제 사회의 공동 대응이 절실하다.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