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 프로레슬러이자 국회의원이던 안토니오 이노키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그의 스승이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국계 선수 역도산이기 때문이다. ‘박치기의 명수’ 김일과는 사형제 간이다. 그는 75세 때인 2017년 자신의 장례식을 손수 개최해 눈길을 끌었다. 스모 경기가 열리는 료코쿠 체육관에서 이별 파티 형식의 생전장(生前葬)을 열고, 지인과 팬들에게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토로했다. 그의 실제 사망 시점은 5년 후인 2022년이었다.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별 파티는 일본의 ‘슈카쓰’(終活·인생의 마무리 활동) 문화를 확산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밖에 건설기계 기업 고마쓰 회장인 안자키 사토루, 배우 이시다 준이치,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 등이 생전장 행사를 했다.
생전장이 확산하는 것은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마무리하려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죽은 다음에 요란하게 장례를 치러봐야 자신은 알 길이 없으니, 정신이 온전할 때 가족, 친구, 지인들과 만나 즐거운 기억을 반추하겠다는 게 이들의 속내다. 검은 옷과 근조 화환, 조의 봉투로 대변되는 장례 문화에 대한 반감도 생전 장례식 열풍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고인의 뜻보다 형식을 우선하는 장례식을 허례로 여기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가까운 이들 수십 명만 초청하는 ‘작은 결혼식’이 유행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생전장을 위해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우선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죽음을 회피하려는 인간이 넘기 어려운 벽이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가족, 친구, 지인들과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올해 83세를 맞은 배우 박정자 씨가 지인 150여 명에게 ‘박정자의 마지막 커튼콜’이란 제목의 부고장을 발송했다는 소식이다. 그의 생전장은 오는 25일 강원 강릉 순포해변에서 열린다. 용기 있는 이의 부고장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꽃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