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학번인 필자 주변에는 운동권이 많았다. 한 친구에 얽힌 사소한 기억이다. 술 한잔하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중 그 친구는 “파쇼 헌법 철폐는 생활 속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며 대뜸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지곤 침을 뱉었다. 그러더니 빨강 신호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길을 건너갔다.
이제는 50대 중후반에서 60대 초반에 걸쳐 있는 86세대. 젊은 시절 민주화 선봉에 섰다는 자부심에 어떤 세대보다 선민의식과 도덕적 우월감이 강하다. 국민도 탐욕스러운 과거 기득권층에 견주어 ‘그래도 좀 착한 사람들’로 봐 왔다. 그 통념을 산산이 깨뜨린 이가 조국이다. 그는 남들에게는 “모두가 용이 될 필요가 있나.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가붕개’론을 펴면서 정작 본인과 가족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용이 되려고 했다가 지금은 철창신세를 지고 있다.
조국과 서울대 82학번 동기 중 대표적인 인물이 요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총학생회장 출신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다. 김 후보를 둘러싼 의혹도 개인 신상과 관련한 도덕성 문제다. 개인 재산 증식과 채무 변제 과정, 학위 이수, 아빠 찬스, 모친 빌라 전세 계약 등 석연치 않은 의혹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늘어난 재산과 공식 소득 간 격차가 상당한데도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 후보가 코너에 몰리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원사격에 나섰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어제 “당쟁이 심한 조선시대를 봐도 도덕성 검증이 지나치면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못 쓰는 폐해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아무리 자기편을 두둔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조선시대 당쟁까지 소환하는 데는 실소가 나온다. 청문회를 능력 따로, 도덕성 따로 열자는 주장도 있다. 이런 식의 청문회 분리가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지금껏 김 후보 문제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의혹으로도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한 사람이 많다. 도덕 배제론은 당사자나 주변에서 할 말이 아니다. 해명을 충분히 들은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