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죽은 지 몇 년 됐는데도
구두를 현관에 그대로 두고 있다
뒷굽이 한쪽으로 닳은 낡은 구두
더러 광나게 약칠도 하며
(중략)
구두
아침이면
밖을 향해 놓았다가
저녁이면 지금 막 돌아온 듯이
집 안을 향해 돌려놓는 것은
살아 있는 추억이야
죽은 그 남자 아침이면 출근했다가
저녁이면 퇴근해 그 여자 집으로 돌아온다네
구두가 돌아온다네
―윤재철(1953∼ )
어렸을 때 ‘가훈’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은 적이 있다. 아버지한테 여쭤봤더니 “그런 거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새로 만들어갔다. ‘후회하지 않는다.’ 한 가족이 지킬 가훈은 아니었어도 지금까지 나를 살린 말은 되어 주었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했고 성공보다 사랑을 선택했다. 내 일보다 가족이 먼저였고 10분이라도 더 일찍 귀가하려고 애썼다. 현관에 가족들 신발이 조르륵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복작복작 함께 사는 날이 한때라는 사실을 안다. 한때니까 결국 언젠가는 과거를 후회하리라. 쪼그리고 앉아 내일 가족들이 신을 신발을 정리하는 밤이면 윤재철 시인의 이 시가 생각난다. 낡은 신발마저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마음은 이 시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100년 넘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고, 돈을 싸들고 저승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무엇을 얼마나 후회하는가의 싸움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남의 신발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후회를 줄여주리라. 우리가 할 최선은 덜 후회하는 것뿐이다. 세상의 마지막 날에 나는 과연 무엇을 후회할 것인가.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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