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금가(金假)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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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28 17:29 수정2025.09.28 17:29 지면A35

[천자칼럼] 금가(金假)분리

금산(金産)분리는 한국에서는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 금지를 의미하지만, 미국에선 금융자본의 산업 지배 제한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에서 금산분리가 이런 뜻으로 쓰이게 된 배경엔 JP모간이 있다. JP모간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US스틸, 제너럴일렉트릭 등을 거느린 초거대은행이었다. JP모간은 이 같은 지배력을 토대로 경쟁을 저해하고 미국 경제까지 좌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미국 의회가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을 제정해 상업은행과 주식 인수가 가능한 투자은행을 분리하면서 금산분리 원칙이 마련됐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특혜 대출과 사금고화 논란에 1982년 은행법에서 산업자본의 소유 한도를 8%로 제한했다. 이 비율이 1997년 4%로 강화됐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산업 간 융복합화가 가속화하는 데다 은행이 핀테크에 비해 역차별받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금산분리 완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며칠 전 대통령 참석 행사에서도 스타트업 투자 확대를 위해선 관련 규제 혁파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 통합 논의를 계기로 ‘금가분리’가 이슈로 떠올랐다. 금가분리는 전통적인 금융(金融)과 가상(假想)자산이 결합돼선 안 된다는 의미다. 은행, 보험사 등 기존 금융회사가 가상자산회사에 출자하는 것은 물론 협업하는 것도 제한한다는 원칙이다. 가상자산의 큰 위험으로부터 전통 금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정부가 2017년 말 고강도 가상자산 규제를 가하면서 견지해 온 암묵적 룰이라고 한다.

금융당국 일각에선 네이버파이낸셜이 페이를 운영하는 핀테크이자 전자금융업자인 만큼 전통 금융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거느린 두나무와의 결합은 금가분리 원칙에 어긋난다. 반면 핀테크까지 은행과 같은 전통 금융회사로 보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산분리도 시대에 뒤처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또 다른 규제 논의가 시작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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