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기 유럽 외교 무대의 중심이던 로마 교황청은 상대하는 국가의 지위에 따라 각기 다른 방에서 사절을 만났다. 프랑스와 베네치아 같은 강국의 대사를 접견할 때는 크고 화려한 ‘살라 레기아’(왕의 방)를 이용했다. 반면 국력이 변변찮은 소국이나 관계가 불편한 국가의 대표를 맞이할 땐 실무공간인 ‘살라 두칼레’(공작의 방)를 사용했다.
외교 행사는 복잡한 프로토콜(의전)의 경연장이다. 협상 장소가 지닌 상징성은 기본이다. 테이블과 의자 크기 및 위치, 국기 같은 국가 상징물 배치를 세심하게 구분한다. “단어 하나로 제국을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는 명외교관 리슐리외 추기경의 조언처럼 사용하는 호칭과 어휘도 까다롭게 고른다. 외교 의전은 그 국가가 받는 대접이자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다.
외교가에선 국가 간 관계를 지칭하는 표현도 다양하다. 통상적으론 좋은 의미의 단어를 에둘러 사용한다. 적대적 상황이 아니라면 대개는 동반자 관계로 불린다. 여기에 ‘협력적’ ‘포괄적’ 같은 수식어가 첨가된다. 정치적 무게감이 남다른 것은 ‘전략적’이라는 수사가 붙을 때다. 외교 관례상 ‘동맹’ 다음으로 최고 단계의 협력 관계를 지칭하는 경우 이 단어를 많이 쓴다.
국가 간 관계를 다루는 표현은 규정이나 법령으로 따로 정하지 않고 모호하게 유지하는 게 관례다. 한국 외교부도 국가관계 호칭에 대한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정황상 어느 정도 ‘등급’을 가늠할 수는 있다. 특정 국가에 붙는 수식이 ‘동반자 관계’에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거쳐 ‘전략적 동반자 관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길어질수록 양국 관계도 심화했다고 볼 수 있다.
어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한국과 프랑스 관계가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다. 2004년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이후 22년 만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와의 관계 심화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격이 높아진 호칭만큼 양국 간 교역 증대와 문화 교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길 기대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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