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호의 자본시장 직설] 세대 갈등 '성장통' 겪는 스무 살 PEF

1 month ago 13

[차준호의 자본시장 직설] 세대 갈등 '성장통' 겪는 스무 살 PEF

국내 도입 20년을 맞은 사모펀드(PEF)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분배와 세대교체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펀드 조성부터 신규 투자, 투자 회수가 유기적으로 이뤄지던 성장기에는 잠재해 있던 문제들이 PEF 시장의 역동성이 둔화하자 수면 위로 불거지고 있다.

PEF 업계에선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중반 창업자를 1세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후반 출생자를 2세대, 1990년대생 이후를 주니어로 분류한다. 몇 건의 대박 투자와 초기 조성한 펀드 청산을 통해 창업자들은 이미 막대한 부를 쌓았고,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주니어들은 밀려드는 업무에 분주하다. 투자와 관리를 총괄하는 ‘낀 세대’는 심란하다. 성과보수를 충분히 누리지도, 지분을 확보하지도 못했다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분배 기준' 둘러싼 갈등 폭발

요즘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의 차기 한국 대표로 거론되던 2세대 전무급 인사가 회사를 떠나 신생 PEF를 설립하기로 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앵커PE 특유의 분배 제도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앵커PE는 포트폴리오 기업에서 대박이 터지면 과거 해당 투자를 결정한 인력에 성과보수를 배분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퇴사했더라도 보상해준다. 남은 인력 사이에선 “열심히 일해 회사를 잘 팔아도 보상은 선배들이 챙긴다”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차준호의 자본시장 직설] 세대 갈등 '성장통' 겪는 스무 살 PEF

UCK파트너스에서도 중간급 인력 이탈이 잦다. 메디트 투자로 1조원 이상의 잭팟을 터뜨렸지만, 보상이 일부 파트너에게 집중되면서 불만이 쌓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등 초대형 PEF들도 세대 갈등에 속앓이하고 있다. MBK는 김병주 회장 등 파트너 주도로 ‘재벌 공격’ 카드를 꺼내들면서 갈등은 심화하고 있다. 1세대의 전략 전환으로 진행하던 거래가 줄줄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MBK의 장점이던 바이아웃 전략을 활용해 큰돈을 쥐려던 직원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한앤컴퍼니 주니어급의 고민은 결이 다소 다르다. 고액 연봉과 성과급으로 훌륭한 보상 체제를 갖췄지만 한상원 대표 등 소수 파트너가 모든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보수적인 문화에 불만을 토로한다.

토종PE의 새로운 시험대

IMM, VIG, 스카이레이크, 스틱, JKL 등 창업자 은퇴를 앞둔 토종 PEF 운용사에선 후계 구도에 관심이 모아진다. 하지만 모두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불만이 나올 때마다 잦은 내부 승진이나 외부 인사 영입에 집중하면서 인력 구조가 역피라미드형으로 굳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역사가 긴 해외 PEF들은 운용사 상장을 통해 세대교체와 분배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왔다. 창업자는 시장에서 지분을 현금화해 물러서고, 후배는 성과에 따라 지분을 액면가나 할인된 가격에 매입할 권리를 얻는다.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홈플러스 사태 등으로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PEF 상장은 사실상 물 건너갔고, PEF 몸값에 대한 창업자 눈높이를 후배들이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돈보다 사명감으로 일한다”던 창업자들이 끝까지 지분과 의사결정 권한을 내려놓지 않을 때, 우수 인력들은 결국 PEF를 떠나게 된다. 반면 창업자 입장에서 맨손으로 키운 개인 회사의 지분을 적정 가치 이하로 넘기기란 쉽지 않다. 뚜렷한 유형 자산이 없는 PEF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다.

인센티브는 합리적인 분배 체계와 명확한 세대교체 계획이 있느냐에 달렸다. 이는 시장경제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PEF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과제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운용사가 세대 간 충분한 합의와 양보를 통해 시스템을 갖춰 지속가능성을 갖춰 나갈지가 국내 PEF 시장의 새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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