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한국미로토를 아시나요

2 weeks ago 6

[차장 칼럼] 한국미로토를 아시나요

한국미로토는 불과 2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일본의 기술 제휴사 미로토는 자사 기술로만 회사를 운영할 것을 강요했다. 기어이 독자 기술을 개발하면 인연을 끊겠다고 했다. 기업 존립이 위태로운 암담함 속에서 48세의 이경수 대표는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떠날 테면 떠나라. 영원토록 하청업체로 남을 수는 없다.’ 한국미로토는 코스맥스의 전신이다. 글로벌 1위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로 성장한 바로 그 코스맥스 말이다.

"겁먹고 있을 틈도 없었다"

한국경제신문은 1994년 1월 19일 한국미로토의 운명을 짤막하게 다뤘다. 콧대 높은 미로토는 제휴 계약을 파기해버렸고, 서울 사무소마저 폐쇄한 뒤였다. 기사의 제목은 ‘한국미로토, 코스맥스로 상호 바꿔’였다. 그날 신문은 “한국미로토는 상호를 코스맥스로 바꾸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간다. 코스맥스 측은 18일 경기도 향남 공장에 연산 1000만 개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갖추고 이번주 안에 생산을 시작한다고 밝혔다”고 썼다.

연 매출 2조원을 훌쩍 뛰어넘으며 ‘K뷰티 제국’을 이끈 코스맥스의 서막은 이렇게 올랐다. 지금 코스맥스의 연간 화장품 생산능력은 38억 개에 이른다. 글로벌 1위 화장품 ODM 업체란 타이틀을 거머쥔 것도 벌써 10년째다. 자사 기술만 쓰라고 윽박지르다가 떠나가 버린 제휴사 미로토의 매출은 일본 내에서도 30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 얼마 전 기자에게 말했다. 특유의 담담한 어투로. “창업 2년 만에 제휴사를 놓쳤는데 겁이 왜 안 났겠어요. 그런데 겁먹고 있을 틈도 없었어요. 그저 해야겠다 싶은 일을 했죠. 어떻게 해냈을까요.”

코스맥스 성공은 코스맥스만의 경사가 아니었다. 한국 화장품 회사들이 연간 100억달러(약 14조원)를 수출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발판이 됐다. 현재 한국의 뷰티 브랜드는 4만 개가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생산설비가 아예 없다. 생산설비는커녕 화장품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말만 하면 만들어주는 회사가 있으니 시장에서 먹힐 만한 기획·마케팅 역량만 있으면 된다.

코스맥스는 중국, 미국에 이어 인도와 유럽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인도에서는 인도 브랜드의 화장품을 제조해 인도인들에게 팔고, 유럽에서는 유럽 브랜드의 화장품을 생산해 유럽인들에게 판매한다. 한류가 시들더라도 유효한 전략이다. 지금도 상위 20개 글로벌 화장품 업체 가운데 16곳이 코스맥스와 거래하고 있다.

한류가 시들어도 괜찮은 사업

한국미로토가 코스맥스로 재탄생한 과정은 한국 경제가 지나온 날과 나아갈 길을 함께 보여준다. 자강의 의지를 다지고 첨단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이 어둠을 헤치고 나아갈 해법이란 얘기다. 인공지능(AI) 시대라고 해서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느덧 79세인 이 회장은 오늘도 꿈을 꾼다고 한다. “회사 창업해서 어려운 것은 다 잊어버리자. 이제 우리는 글로벌 넘버원이다. 자신 있게 나가자.” 이 회장의 새로운 꿈과 지금 이 순간에도 30여 년 전 이 회장과 같은 결기로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나아가는 우리 기업인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