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간 일어난 모든 일보다 훨씬 더 심오한 문턱에 지금 서 있다.”
지난 4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에서 열린 창사 50주년 행사에 예정에 없던 인물이 무대 위로 올라 인공지능(AI)의 파괴력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주인공은 50년 전 ‘모든 가정이 컴퓨터 한 대씩을 갖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MS를 세운 빌 게이츠 창업자. 그는 “50년 후 MS의 최고경영자(CEO)는 AI가 될지도 모른다”며 챗봇과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넘어 에이전트(비서)로 진화한 AI가 미래 산업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엔 스티브 발머 전 CEO와 사티아 나델라 현 CEO가 참석해 게이츠와 만담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50년 역사의 MS에서 단 세 명뿐인 전·현직 CEO다. 게이츠가 1975년부터 2000년까지 초기 성장을 이끌었고 발머가 2014년까지 바통을 넘겨받았다. 나델라는 2014년부터 MS 수장을 맡고 있다.
MS는 이날 자사 AI에이전트 ‘코파일럿’의 대대적 개편을 발표했다. 큰 변화는 그간 웹에서만 쓸 수 있었던 코파일럿이 모바일 기기에서 ‘구글 렌즈’처럼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눈’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코파일럿 비전은 이용자가 제시한 텍스트나 이미지를 놓고 AI와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 카메라로 미술품을 찍으면 어떤 작품인지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기억하고 있는 사용자 선호도를 토대로 집에 어울릴 것 같다는 추천도 해준다. 무스타파 술레이만 MS AI사업부 CEO는 “코파일럿이 높은 지능지수(IQ)와 감성지수(EQ)는 물론 높은 행동지수(AQ)를 갖추도록 총력을 다했다”고 말했다.
몇 주 내로 선보일 ‘코파일럿 액션’은 앞서 출시된 오픈AI의 ‘오퍼레이터’와 비슷하게 AI에이전트의 기본을 구현했다. 간단한 명령을 넣으면 스스로 식당을 예약하거나 특정 상품의 최저가 구매 링크를 안내하고 사용자가 동의하면 결제까지 완료해준다. MS는 이를 위해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등과 제휴한다고 밝혔다.
MS는 코파일럿을 앞세워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 주도권 회복에 나설 방침이다. 지난해 MS 매출에서 클라우드 등 기업 간 거래(B2B)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75%가 넘는다. 한때 장악했던 웹브라우저, OS(운영체제) 등 B2C 시장은 구글과 애플 등 경쟁업체에 잠식당한 지 오래다. MS는 똑똑해진 코파일럿이 소비자 마음을 돌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업계 관계자는 “PC OS와 클라우드, 업무 협업 툴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MS가 AI 에이전트를 업그레이드한 것은 경쟁사들에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했다.
AI 에이전트 시장을 둘러싼 빅테크 간 경쟁은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캡제미니에 따르면 지난해 51억달러(약 7조5000억원)이던 AI 에이전트 시장은 2030년 471억달러로 불어날 전망이다. 빅테크가 AI 에이전트 성능을 끌어올릴수록 쇼핑 및 음식 배달, 차량 공유 등 기존 플랫폼 기업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AI 에이전트가 모든 것을 대신해주면 플랫폼을 따로 이용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레드먼드=송영찬 특파원/고은이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