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의 인공지능(AI)칩 수출 통제가 강화된 이후 3개월간 최소 10억달러 상당의 엔비디아 AI칩이 중국으로 밀수됐다고 24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중국의 여러 유통업체가 판매 금지된 엔비디아의 B200 칩을 중국 AI 기업들이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공급업체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B200 칩은 블랙웰을 기반으로 한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으로, 중국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저사양의 'H20' 칩보다 성능이 우수하다.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존 H100과 같은 고성능 AI칩뿐만 아니라 H20 등 중국 수출용 칩에 대해서도 수출 금지조치를 내렸다.
복수의 소식통은 B200 칩이 중국 내 판매가 금지됐지만 "미국산 칩에 대한 수요가 활발한 중국의 암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광둥성과 저장성, 안후이성의 유통업체들은 B200뿐만 아니라 H100, H200 등 판매가 제한된 다른 칩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밀반입된 엔비디아 칩은 최근 3개월간 10억 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동남아시아가 중국 기업들이 칩을 확보하는 시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상무부는 오는 9월부터 태국 등 국가들을 대상으로 고급 AI 제품에 대한 추가 수출 규제를 논의 중이라고 FT는 보도했다. 판매가 제한된 제품들이 중국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에 엔비디아가 관여했거나 이를 알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엔비디아는 "밀반입된 칩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비효율적"이라며 "우리는 공식 인증된 제품에 대해서만 서비스와 지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선 이처럼 불법 밀수된 엔비디아의 첨단 AI 칩에 대한 수리·유지보수 사업이 성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에 있는 업체 2곳을 인용해 이 일대에서 10여개의 소규모 회사가 엔비디아의 H100 GPU, A100 GPU, 이외 다른 칩에 대한 수리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매체는 "지난해 말부터 수리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상당량의 엔비디아 칩이 중국으로 밀수됐다는 관측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에 들어온 일부 H100 GPU와 A100 GPU는 수년간 24시간 내내 데이터를 처리해온 결과 고장률이 높아졌다. 사용 빈도나 유지보수 주기에 따라 엔비디아 GPU는 통상 2∼5년 후 수리가 필요하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