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만 했어도"…70대 노인에 944만원 '요금 폭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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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SKT 고객, '명의 도용' 피해
피해노인 명의로 2개 회선 개통
1년여간 소액결제 등 요금 944만원
SKT, 피해노인에 "요금 내라" 소송
법원, 항소심서 "요금 낼 필요없어"
SKT, 지난 25일 '소취하서' 제출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명의 도용을 당해 쓴 적도 없는 통신요금을 청구받은 70대 노인이 SK텔레콤과 3년여간 소송전을 벌인 끝에 1심을 뒤집고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이 노인에게 청구된 요금은 약 944만원에 달했다. SK텔레콤은 피해 노인 명의 공인인증서가 사용됐다는 이유를 들어 사용료 청구 소송을 냈었다.

명의 도용 피해노인, 통신요금 고지서에 '944만원'

사건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텔레콤은 그해 11월 당시 78세였던 A씨 명의로 작성된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신청서 2건을 전송받았다. 이에 따라 A씨 명의의 이동통신서비스 이용계약 2건이 체결됐다. 계약 체결 과정에선 A씨 명의로 발급된 공인인증서가 사용됐다.

SK텔레콤은 2022년 9월 A씨 명의 회선을 모두 해지했다. 통신요금이 연체됐다는 이유에서다. 계약 해지 전인 같은 해 2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미납요금은 약 944만원. 이 중 소액결제로 인한 이용요금 약 124만원에 대한 채권은 결제대행사로 이관됐다.

A씨는 같은 해 10월 SK텔레콤 측 연락을 받고 매장을 찾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명의가 도용됐다고 신고했다. 8일 뒤엔 경찰서를 방문해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성명불상자를 고발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듬해 7월 A씨에게 "피의자를 추적했으나 피의자는 범행에 사용된 이름 등 피해자 정보를 사용했고 소액결제해 배송 받은 물품 수령인의 전화번호는 '대포폰'으로 확인됐다"며 "피의자를 특정할 단서 확보가 불가해 관리미제 사건으로 등록했다"고 통지했다.

명의 도용 '미제'…SKT, 피해노인에 요금 청구 소송

SK텔레콤은 같은 해 11월 A씨에게서 요금을 받아내기 위해 소송을 냈다. A씨 상대로 사용료 청구 소송을 제기, 결제대행사로 이관된 소액결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약 820만원의 요금과 함께 이를 다 갚는 날까지 연 12% 비율로 계산한 이자를 요구했다.

SK텔레콤이 소송을 낸 데는 법적 근거가 있었다. 전자문서법은 전자문서가 작성자나 그 대리인의 의사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작성자의 의사표시'로 간주해 법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SK텔레콤이 A씨 의사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 근거는 공인인증서다. A씨 명의로 된 공인인증서를 활용해 이동통신서비스 이용계약이 체결된 만큼 A씨 의사에 따라 요금이 사용된 것으로 간주해 사용료를 청구했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대법원 판례도 근거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2018년 3월 전자문서법을 근거로 전화통화나 면담 등 추가적 본인 확인 절차를 밟지 않았더라도 전자문서상 내용을 작성자의 의사로 보고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1심, 피해노인에 "돈 내야"…2심에선 판결 뒤집혀

1심은 SK텔레콤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판단이 뒤집혔다. 서울중앙지법 제10-2민사부(재판장 정도성)는 SK텔레콤이 근거로 제시한 대법원 판례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전자서명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옛 전자서명법은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한 공인인증서로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2020년 6월 법이 개정되면서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하는 공인인증서 제도가 같은 해 12월 폐지됐다. SK텔레콤이 제시한 대법원 판례는 개정 이전 법률을 근거로 한 법리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봤다.

그러면서 "A씨 명의의 공인인증서로 본인 인증이 이뤄졌다 해도 계약서에 포함된 A씨 명의의 의사표시가 A씨나 그 대리인의 의사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씨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계약 체결 사실을 알렸다는 회사 측 주장에 대해선 "본인 확인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명의 도용 위험을 경고하는 서비스에 불과하다"며 "고객이 이동통신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가입됐다는 문자를 받은 뒤에 어떠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본인확인이 된 것과 같다고 볼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A씨가 당시 사용하던 이동전화 외에 추가로 이동통신서비스에 가입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던 점도 법원 판단을 뒷받침했다. 계약서에 적힌 주소도 A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와 다른 데다 해당 지역에 거주한 사실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는 "SK텔레콤은 A씨가 아닌 자가 A씨 명의를 도용해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신청서를 작성했다고 의심해볼 수 있었고, A씨가 당시 사용하던 이동전화로 통화하는 등 추가적 본인확인 절차를 거쳤어야 할 것"이라며 SK텔레콤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에 SK텔레콤은 지난달 25일 소취하서를 제출하고 약 3년에 걸친 소송전을 마무리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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