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답사로 보는 서울의 현재
1100여 회 서울 답사 기록 축적… 골목-건축에 스민 삶의 모습 담아
재개발로 사라진 풍경 등 기록… ‘현재의 서울’ 마지막 흔적 남겨
한국의 ‘마당집’ 계보 이으며… 개발과 도시 공존의 길 모색
전시는 총 네 공간으로 구성된다. 먼저 1층에서는 2000년부터 25년간 1100회 이상 서울 골목과 건축에 스며든 생활의 흔적을 조사 및 기록해 온 ‘수요답사’의 여정을 소개한다. 2층에서는 이 답사를 토대로 구현된 구가도시건축의 주요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3층에서는 재개발이 한창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를 압도적 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하고, 2000년대 현대 한옥의 변곡점으로 평가받는 한옥호텔 ‘라궁’ 모형 등을 전시한다. 야외 공간에는 ‘마당집’의 4가지 요소(마루·방·처마 공간·마당)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파빌리온을 설치했다.
도시의 골목과 집, 그 안에 담긴 삶의 모습을 기록한 ‘수요답사’는 이전 답사의 끝에서 다음을 시작하는 ‘이어 보기’ 방식으로 동네를 스캔하듯 탐색한다. 예를 들어 서울 성곽 동쪽 지역은 3년간 152회의 답사를 통해 조사했다. 답사 과정에서 흥미로운 요소는 UU(urban unit), 특별한 공간은 US(urban space), 독특한 도시조직은 UT(urban tissue)로 표시하고, 실측·촬영·3차원(3D) 스캔 등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한 뒤 도면과 모형으로 재구성한다.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는 “실측이 소리를 채집하는 것이라면, 도면은 악보를 그리는 것과 같다”며 실측과 기록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는 “도시라는 거대한 나무 속으로 들어가 나이테 사이를 누비듯, 서울의 공간과 시간에 누적된 삶의 형상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바로 수요답사”라고 말한다.수요답사는 과거의 흔적을 찾는 고고학적 접근과 달리 ‘현재’의 서울을 기록하는 답사다. 건축과 골목 같은 외형적 요소뿐 아니라 골목의 화분, 전봇대, 간판, 덧댄 처마, 건물의 사용 방식 등에서 드러나는 시간의 축적과 무형적 삶의 형상 및 의미까지 함께 포착한다. 재개발로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기록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풍경’이 사라진 동네의 마지막 기록이 되기도 한다.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면서 25년 동안 매주 답사를 이어 오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정구 건축가는 이렇게 답했다. “답사 자체는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다만 조만간 재개발로 철거될 지역을 찾을 때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마음이 힘들 때가 있죠.”
외국인들은 서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켜켜이 적층된 독특한 도시풍경을 꼽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 성수동이나 익선동, 서촌, 북촌 등은 이미 아파트 재개발보다 ‘지역을 유지하는 것’이 더 높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곳으로 꼽힌다. 부동산 재개발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만약 한남동이 재개발 대신 동네의 결을 유지하며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었다면, 미래의 서울 풍경과 역사는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600년 역사도시 서울을 도시의 흔적 없이 아파트와 남은 몇몇 궁궐만으로 설명해야 한다면, 참으로 공허할 것이다. 을지로, 한남동, 서대문 등 재개발로 사라진 지역은 오랜 시간 삶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도시의 역사 그 자체다. 수백 년간 땅에 새겨진 흔적과 역사를 완전히 지워 버리는 일은 매우 유감스럽다. 그렇기에 기록과 보존, 그리고 이를 사회와 공유하는 담론과 전시 등은 서울의 미래를 위해 시급한 과제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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