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경북바이오2차산업단지는 지난해 말 기준 입주율이 14%에 그쳤다. 2019년부터 조성돼 2021년 첫 입주가 시작됐지만 약 3년 동안 입주율 20%도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도 인근에는 안동바이오생명 국가산업단지가 추가로 조성되고 있다.
바이오클러스터가 뚜렷한 컨트롤타워 없이 전국 곳곳에 무분별하게 조성되고 있다. 제대로 된 수요조사와 인프라 구비가 이뤄지지 않은 채 잇달아 세워지다 보니 기업들이 외면하고 바이오 생태계 조성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 입주할 기업 없는데 ‘우후죽순’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는 15개 시·도에 25~30개 바이오클러스터가 조성돼 있다. 시·도마다 약 2개씩 세워지면서 기업 입주율이 저조한 클러스터가 속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바이오클러스터 입주율·분양률 자료에 따르면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입주율은 지난해 말 기준 66.7%에 그쳤다. 이 단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해 6개 국가 기관이 있고 LG화학, HK이노엔, 메디톡스, 바이넥스 등도 입주한 국내 대표 바이오클러스터다. 1997년 조성이 본격화돼 2008년 제1단지, 2021년 제2단지가 완공됐다. 한 입주기업 관계자는 “여전히 빈 땅이 많아 곳곳을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고 전했다. 강원 춘천·홍천 지역에는 현재 바이오클러스터가 네 개나 있는데도 여섯 개가 추가로 조성될 예정이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클러스터만 만들어놓으면 기업이 올 것으로 착각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다”고 지적했다.
◇ 모여도 시너지 못 내
바이오클러스터는 기업과 바이오 유관기관이 밀집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히는 미국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에선 기업과 병원, 연구소 등이 맞닿아 있어 언제든지 관계자들끼리 만나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클러스터는 병원, 대학이 없는 데다 허허벌판 위에 기업이 입주할 시설만 덩그러니 지어 놓은 곳이 대부분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클러스터 기업들은 기술의 제품화, 사업화, 마케팅 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협력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조성되다 보니 정권별, 기관장별로 부침이 심하고 민간에 비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래 아주대의대 교수는 “보스턴은 기술 경쟁력 있는 기업만 클러스터에 살아남는 구조인 반면 한국 클러스터에선 ‘퍼주기’식 연구개발(R&D) 예산에 의존하는 기업이 많다”고 했다.
◇ 분산되는 연구개발 역량
클러스터 관리 주체도 제각각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바이오클러스터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만 해도 산업단지법, 경제자유특구법, 연구개발특구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법, 과학기술기본법, 첨단의료복합단지법, 국가첨단전략산업법 등 7개가 넘는다. 관련 부처도 산업부, 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별 지자체 등으로 나뉘고 조성 초기엔 국토교통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도 관여한다. 김주원 KISTEP 인재경영실장은 “바이오클러스터별 상이한 근거법과 제도는 운영체계의 모호함을 낳는다”며 “국가 차원의 바이오클러스터 통합 관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오클러스터가 난립해 연구 역량이 분산된다는 점도 문제다. 신영기 서울대 약대 교수는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고정관념과 ‘정부 주도로 하면 된다’는 인식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이오클러스터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윤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국 클러스터를 서로 연결해 경쟁력을 키우는 묘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