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생물학 무기는 세균·바이러스·곰팡이·독소 등 병원체를 활용한 대량 살상무기를 말한다. 탄저균·천연두·보툴리눔 독소 등이 대표적이다. 공기 중 감염이 가능하며, 소량만으로도 수십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파괴력을 지녔다. 전파 경로가 다양해 '빈국(貧國)의 핵무기'로도 불린다. 핵이나 화학무기보다 흔적이 적고 대응이 어렵다는 점에서 현대 안보에서 최대 위협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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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생물학 무기는 중세 시대 때 공성전에서 투석기로 시체나 가축의 사체를 성 안에 던져 넣는 것이었다. 심리전을 병행하기 위해 적군 전사자들의 시신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전파되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가 중국에서 탄저균·페스트 등을 활용한 인체실험을 자행한 것이다. 냉전 시대에 소련은 '바이오프레파라트'(수의예방학) 프로젝트를 통해 생물학 작용제의 생산과 시험을 진행했고, 미국도 1960년대까지 포트 데트릭 기지에서 비밀리에 생물학 무기를 개발해왔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2025 군비통제·비확산·군축 합의와 약속의 준수·이행' 보고서에서 북한이 1960년대부터 생물학 무기를 개발·보유해왔다고 밝혔다. 북한은 현재 '유전자 편집'(CRISPR) 기술을 활용해 병원체를 유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북한이 유전자 조작을 활용한 생물학 무기의 제조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보고서는 분사기나 펜(pen)형 장치 같은 은밀한 운반 수단을 통해 무기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이러한 활동이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효과적으로 생물학 무기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1975년 발효된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은 생물학 무기의 생산과 보유를 금지하고 있지만, 강제 조사권이 없어 실효성이 매우 낮은 실정이다. 다만, 생물학 무기는 개발을 하더라도 임의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특정 목표에 투입되는 핵무기나 기상적 조건 등으로 예측 가능한 화학 무기와는 달리 생물학 무기는 살아있다는 특성으로 인해 통제하기가 힘들다. 함부로 사용할 경우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 지역에도 유출돼 엄청난 피해가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87년 BWC에 가입했으나,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염소(CL)·포스겐(CG)·시안화물(AC)·사린(GB)·소만(GD)·VX 등 화학 무기뿐 아니라 탄저균·보툴리늄 독소·폐 페스트 등 10여종의 생물학 무기 제제(製劑)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핵을 넘어 '조용한 무기'로까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무기화 역량은 국제 규범의 한계 속에 비대칭 전력의 확산이란 엄중한 현실을 함축하고 있다.
jongwo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4월21일 14시0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