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의 기침이 멎질 않았다. 긴 검사 끝에 아버지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고 어머니는 병원 간병으로 바쁘게 움직이셨다. 그 무렵 나는 열 달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키우며 복직한 지 얼마 안 된 워킹맘이었다.
아이를 돌봐주던 친정어머니가 병원 간병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나는 아이 돌봄을 위해 어린이집과 아이돌보미 앱을 전전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아버지 간병에는 전혀 참여할 수 없었고, 그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돌봄이란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이른바 ‘돌봄의 사적 전가’가 필자 세대를 비롯한 수많은 중년층에게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8.4%로 초고령사회 문턱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래서 고령화된 가족을 돌보는 가족의 숨은 이야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시행된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일정 부분 부담을 덜어주고 있기는 하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말 기준으로 약 110만 명이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원 동행이나 정서적 지지, 일상생활 전반을 함께하는 돌봄까지 제도가 모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사회 제도의 울타리 바깥에서 이뤄지는 돌봄은 여전히 가족 몫으로 남아 있다. 공적 돌봄의 사각지대가 개인 몫으로, 결국은 ‘효(孝)’나 ‘가족애’로 치환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이중 돌봄’ 세대라고 불린다. 부모와 자녀를 함께 돌보며 느끼는 고립감과 압박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통계청이 매년 시행하는 ‘지역별 고용조사’의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40~54세 경력 단절 여성 중 약 7.5%는 가족 돌봄을 이유로 경력 단절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육아나 자녀 교육처럼 더 큰 비율을 차지하는 요인이 있지만 가족 돌봄도 중년 여성에게 중요한 부담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든 40대 초·중반도 이중 돌봄의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랑과 효도의 정신을 강조하며 돌봄을 지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돌봄은 일상에서 가장 깊은 관계를 다시 묻고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공적 돌봄의 역할과 사적 돌봄의 한계가 함께 드러나는 지금 돌봄을 단지 가족의 의무로만 보지 않고 사회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가족 안의 돌봄이 홀로 떠맡을 수 없는 무게가 되지 않도록, 이를 사회가 함께 나누고 지지하기 위한 논의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공동체를 활성화하거나 가족돌봄휴가제도와 같은 공적 지원체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에서도 가족돌봄휴가 사용을 보장하고 유연근무제를 확산해야 한다. 돌봄의 책임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한 세대의 고충을 덜어주는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고 세대 간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