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생성과 소멸] 〈17〉산업현장 곳곳에 인재들의 놀이터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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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저자)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저자)

격렬한 시위에 자리를 내줬던 광화문광장이 지난 3월 21일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번엔 시위가 아니다. BTS의 컴백 공연을 보려는 인파가 광화문을 가득 메웠다. 주최 추산 10만명이 모였다. 190개국 1840만명은 TV 앞을 지켰다. 4년 공백을 감안해도 인기와 영향력은 여전했다. 흔히 BTS의 성공비결로 세련된 음악과 사회적 메시지, 압도적 퍼포먼스와 진정성 있는 소통을 든다. 물론 타당한 분석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고수했던 시스템의 문제점이 오히려 BTS의 성공에 일조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 사회는 1980년대까지 국가 주도의 '규율사회'였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이다. 저임금 노동력에 주목했다. 국민의 노동력을 계획적으로 키우고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는 것이 중요했다. 국가정책에 따라 국내 공장뿐만 아니라 독일 광산, 중동 건설현장에서 목숨 걸고 일했다. 유학을 장려하고 해외 인재도 발굴했다. 서구 선진국의 검증된 발전모델을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잉(fast following)'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이를 위해 학교와 직장은 창의력보다 법령과 매뉴얼 등 규율을 금과옥조로 삼는 순응적 인재를 양산했다. 자연스레 법령과 매뉴얼을 해석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법조인의 인기도 높아졌다. 아프거나 다친 사람을 치료해 일터로 보내는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와 경영진의 지시를 잘 따르면 충분했고 창의력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잠재력을 가진 창의적 인재는 '딴짓'을 일삼으며 조직 질서를 해치고 '패스트 팔로잉'에 제동을 거는 이단아로 간주됐다.

ⓒ게티이미지뱅크ⓒ게티이미지뱅크

1990년대 이후 '성과사회'에 진입했다. 세계가 온라인으로 연결돼 하나의 경제권이 되면서 모방에 의한 성장은 한계에 직면했다. 경기침체 등 부담을 느낀 기업은 임직원에게 성과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노동은 비용으로 간주되고 기술로 대체됐다. 순응적 인재를 양산하는데 목표를 뒀던 과거의 규율은 저성과자를 솎아내고 임직원을 줄이는 가혹한 잣대가 됐다. 그 결과 시장은 경쟁사업자뿐만 아니라 직장동료와도 싸워야 하는 생존투쟁의 장이 됐다. 학교는 지식 함양보다 취업을 위한 무한경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같은 시험지로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 안에서 창의적인 인재가 나올 자리는 없었다. 교육과 취업을 거치면서 평범한 직장인의 유리천장에 갇히고 말았다. 창의를 강요하면서 창의를 발휘할 환경을 주지 않는 모순이 이어졌다. 많은 인재가 해외로 떠나거나 침묵 속에서 안정을 택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는 달랐다. 원래부터 주류사회의 바깥에 있었다. 고정수익을 기대할 수 없으니 '대박'을 노렸고 예술혼에 취해 살았다. 역설적으로 회사법, 근로기준법과 매뉴얼 등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이 회색지대가 인재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해방구가 됐다. 기존 산업의 규율과 성과중심주의에 지친 인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고 창작의 기발함으로 승부할 수 있는 '놀이터'가 마련됐다. 열정은 혹독한 훈련과정을 이겨냈다. 그 가능성을 보고 자본과 기술도 들어왔다. BTS의 성공은 기획, 실행 등 모든 단계에서 인재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했을 때 어떤 폭발력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제 규율과 성과라는 낡은 엔진은 우리를 견인할 수 없다. 규율칸막이를 낮추고 성과장막을 걷자. 누구나 원하는 것을 기획, 실행할 수 있는 창의의 문을 열자.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제도적 통제보다 자율적 몰입을 허용해야 한다. 산업현장 곳곳에 발명 등 아이디어 거래소와 창작실험센터 구축, 규제샌드박스 확대, 위대한 실패 보상 등 인재들의 놀이터가 만들어질 때에 우리는 '패스트 팔로잉'을 넘어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거듭날 수 있다.

누구나 창의적인 인재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런 인재를 키우고 숨 쉴 공간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BTS의 성공이 던지는 진지한 질문은 이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창의는 어떻게 혁신이 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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