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칼자루 속의 자루, 슴베

1 month ago 23

도마를 종이 행주로 훔친다. 냉동실에서 꺼낸 어묵이 옆에 있다. 알맞게 녹은 어묵을 흐르는 물에 씻고 물기를 털고 나서 도마 위에 올린다. 자, 이제 식칼을 들 차례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얼른 볶아 바로 먹으려면 크게 썰어선 안 된다. 손가락 한 마디 간격이 적당하겠다. 쓱쓱 잘도 썰린다. 칼이 제대로다. 틈나는 대로 갈아 둔 덕분이다. 이미지 확대 식칼 [연합뉴스TV 제공] 틈틈이 갈아두었다고 할 때, 그 간 대상을 우리는 '날'이라고 한다. 손잡이, 곧 자루를 쥐고서 칼날로 어묵을 서걱서걱 자르며 "아, 칼 잘 든다"고 한다. 사실은 날이 잘 드는 것이지만 말이다. 날과 자루가 칼의 전부일 리 없다. 칼의 주요 부분을 이르는 말 가운덴 '슴베'도 있다.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이다. 슴베를 스테인리스강 등 다른 재료로 쥐기 좋게 감싸면 자루가 되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할 때 '슴베찌르개'라는 단어를 들은 바 있다. 슴베를 만들어서 창이나 화살 따위에 꽂아서 쓰는 찌르개를 말한다. 사물의 부분은 흔히 사람이나 동물 몸에 견주어 지칭된다. 칼도 마찬가지다. 날의 가장 앞쪽인 칼끝에서 뒤쪽으로 이어지는 곡선 부위를 칼코라고 한다. 날 반대편의 무딘 쪽은 칼등이다. 딱딱한 식재료는 날을 넣은 채 등을 꽉꽉 누르거나 딱딱 두들겨야 한다. 날만 계속 욱여넣어선 잘리지 않는다. 무척 위험하기도 하다. 칼을 날과 자루로만 나눈다면, 날과 등이 이루는 일체를 날이라고 해도 된다. 날의 가장 뒤쪽으로 자루와 만나는 각진 부위는 턱이고, 날과 자루 사이에 있는 두툼한 금속 경계선은 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확대 '슴베'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자루만 쥐어선 칼질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힘껏 써서 턱에다 목까지 함께 야무지게 쥐어야만 가까스로 자를 수 있는 재료를 만났을 때다. 바로 어제와 같은 때다. 지인이 건넨 박 하나를 도마 위에 올렸다. 실물로 처음 본 박은 겉보기와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는 쪽에 날을 넣었으나 삼분의 일도 들어가지 않는다. 굵은 쪽은 비슷하게 생긴 무보다 쉽게 날이 들어가 쓱싹 잘린다. 세상 이치와 같은가? 문제는 알맹이의 성질이다. 굵고 가늘고는 다음이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최종희,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2015년 개정판), 커뮤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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