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한 바퀴 설렁설렁 걷다가 표지판(아래 사진)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만드셨을까, 얼마나 아끼시길래, 무슨 간식을 드시려나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실은 그런 물음이 꼬리를 물기에 앞서 안내문을 교열하기 시작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는 없겠고요. 요즘 이렇게 매일같이 하는 작업과 어찌 무관하겠습니까. 직업병이 틀림없습니다.
부분을 뜯어보고 전체를 다시 맞춥니다. 먼저 [만들다]입니다. 의자를 꾸미는 과거형 관형어로 쓰려면 [만든] 해야 합니다. '만들+은' 조합에서 ㄹ이 탈락한 결과입니다. 같은 오류가 드물지 않게 보입니다. 녹슬은 철로, 거칠은 벌판, 낯설은 골목길, 모두 다 잘못입니다. 녹슨/거친/낯선 해야 맞습니다. 리을은 가장 모음에 가까운 자음입니다. 다른 자음에 비해 공기 흐름이 원활한 소리로서 유음(流音. 흐름소리)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자음과 결합할 때 발음상의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탈락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렇습니다. 안내문 작성자는 '나는 발음상의 어려움이 없는데' 하면서 [만든] 대신 [만들은]을 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치를 따지면 그럴 수 있다는 추론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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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고형규]
결국 첫째 줄은 '할머니들이 힘들게 만든'으로 정정할 수 있습니다. 힘들게 대신 힘들여, 공들여, 땀 흘려, 애써서, 고생스럽게(고생하여), 어렵게 같은 말을 써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둘째 줄 '의자 가져가지 마세요'는 어떤가요. 표현 오류는 없다고 봐야 할까요? 당부하는 내용이므로 마침표나 느낌표를 찍는 것이 무난합니다. 물음표로 마무리하여 질문하는 내용이 되어버린 모양새입니다. 물음표가 금지명령문 어투를 누그러뜨리는 안전장치로 쓰였다면 판단은 물론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셋째 줄 '간식 먹는 자리에요'에서는 [-에요]를 [-예요]로 고쳐야 합니다. 마침표로 끝맺는 것도 놓치지 말고요. 이것도 심심찮게 표기 잘못이 발견되는 사례입니다. 서술격 조사 [이다]의 어간인 [이]+[에요]가 줄어서 [예요]가 됩니다. 아니다 활용을 포함하여 받침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예문을 봅니다. 학생이에요, 학생 아니에요, 자리예요, 자리 아니에요. 끝으로 다시 한번 마침표 [부탁드려요.] 하며 안내문을 새롭게 써봅니다.
「할머니들이 힘들여 만든 의자예요.
괜히 힘들게 가져가진 마세요.
제자리에 두고 아끼면서 함께 써요.
간식 먹기 딱 좋거든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온라인가나다 상세보기, 에요. 예요 질문 -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309912&pageIndex=1
2. 온라인가나다 상세보기, ㄹ 탈락의 조건 -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309790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14일 05시5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