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미립이 트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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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통하여 얻은 묘한 이치나 요령을 일컫는 우리말 명사가 있습니다. [미립]입니다. 어떤 일을 집중하여 오래 하게 되면 실수가 줍니다. 손도 빨라지고요. 한마디로 솜씨가 좋아지지요. 그런 사람을 두고 말합니다. 미립을 얻은 것 같다고요. 그이가 어느 순간 미립을 깨친 덴 이유가 있습니다. 애정을 갖고서 흐트러짐 없이 일에 매진한 거지요.

소설에 쓰인 예를 봅니다. 그가 다른 사물에는 어두운 대신 노동을 하는 데는 미립이 환하였다. (이기영/봄) / 그이는 오소리 잡는 솜씨도 귀신이제마는, 요새 와서는 그런 장사로도 이렇게 미립이 나서 그 재미가 여간 쑬쑬하지 않네. (송기숙/녹두장군) / 워낙 젊은 여자가 없는데다 어머니가 앓고 부엌일에 미립이 트이지 않은 재필이가 때식을 끓여먹는 집안이어서 여간 어수선해보이지 않았다. (북한 소설/금천강) / 변설이 번드드르하글래 세상 물정에는 웬만큼 미립이 트인 줄 알았둥마는, 알고본께 상종 못할 사람이라네. (송기숙/녹두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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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자모

[촬영 고형규]

이치나 요령을 뜻하기에 미립은 있다에서부터 얻다, 깨치다, 깨닫다, 나다, 트다, 트이다, 생기다, 없다에 이르기까지 여러 서술어와 다양하게 쓸 수 있습니다. 이 미립이란 게 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저마다 차이야 있겠지만요. 누군가의 미립이 트는 것을 보려면 참고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것도 숱한 사람이 경험을 통하여 얻은 이치, 즉 미립이 축적되었기 때문입니다.

미립을 얻었다고 자부하는 이가 미립이 없어 보이는 상대에게 조언하는 경우를 봅니다. 자부할 만한지도 모르겠고, 없다고 보는 그 판단이 맞는지도 알 길은 없습니다. 어떤 책에서 본 이야기를 각색하여 소개하는 것은 그이에게 참고가 될까 싶어서입니다. 여기, 나무타기 고수가 있습니다. 미립이 트인 사람이지요. 나무를 얼마간 탈 줄 아는 다른 이에게 타보라 하고 이를 지켜봅니다. 저 높이 어렵사리 끙끙대며 오를 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다 내려왔을 즈음, 묵직하게 한마디 합니다. "조심하세요". 곁에 있던 구경꾼이 묻습니다. "오를 땐 가만히 계시더니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말씀하시네요?" 속으로는 그게 조언이기는 한 거야 하고 비아냥댑니다. 고수는 답합니다. "어지간한 이들은 모두 올라갈 땐 극도로 조심합니다. 사고가 안 나요. 다 내려왔다 싶을 때 마음을 놓아 사달이 나곤 하지요." 이 고수, 조언하기에도 미립이 난 달인 아닌가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2001년 당시 문화관광부 편찬,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말』

2. 박영수, 『우아한 단어 품격있는 말』, 유노책주, 2024 (경기도사이버도서관 전자책, 유통사 교보문고)

3. 고려대 출판부, 한국 현대소설 소설어사전, 1998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7월25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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