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말이 쌓여 말씀 되고 대화 된다

8 hours ago 1

a : 일 더하기 일은 얼마인가?

b : 어려서부터 사칙연산의 신이었어, 내가. 셈에 엄청나게 밝았거든…. 나누기 기호의 유래를 알고 나서 산수에 더 재미를 붙였지. 맨날 100점이야. 100점. 평생 산수와 수학 시험에서 한 문제도 틀린 적이 없어.

c : 남해로 여행 떠난다며. 오늘이라고 했지 아마. 언제 출발해?

d : 나이 들면 비행기를 장시간 타는 게 힘들다며. 세상에나, 옆집 할아버지는 올해 77세라는데, 유럽 여행을 다녀오셨다지 뭐야. 대단하더라. 정말.

e :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느 당이 승리할 것 같아?

f : 아무래도, 표를 많이 얻는 당이 이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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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용론'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a, b 간 대화에서 b는 이이건 삼이건 사이건 a의 물음에 걸맞은 대답을 해야 했다. 맞고 틀리고는 둘째 치고 말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아 둘의 대화가 의미 있게 맺어지지 않았다. 정황으로 보아 b가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거짓말한 혐의가 짙어 보이기는 한다. 맥락을 고려할 때 b는 말 같지 않은 말을 하여 시간만 허비한 느낌이 든다. 말이 썩 미덥지도 않다. b의 대답은 헛소리가 틀림없다. 실속이 없고 미덥지 아니한 말.

d는 또, 어떤가. 언제냐고 시점을 물은 c의 말을 이해는 한 것인지, 아닌지. 둘의 티키타카가 이어지려면 d의 발화(發話. 말) 내용은 출발 시간에 관한 것이어야 했다. 새벽 5시에, 오전에, 정오에, 오후에, 저녁 7시에, 밤 9시에처럼. 말이야 다 되지만 쓸데없기 그지없다. b의 예와 달리 허세나 과장이 없고 거짓말도 없는 것으로는 보인다. 그러나 d의 출발 시점을 알고 싶은 c에게 d의 말은 그저 군소리(하지 아니하여도 좋을 쓸데없는 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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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f의 말은 허세나 과장은커녕, 나아가 거짓말은커녕 오롯이 100% 참말이다. 하지만 하나 마나 한 소리잖나. 표심 얻는 당일 거야, 득표율 높은 당일 테지, 투표일까지 내내 인기가 좋은 당이겠지 하는 것과 같이 너무나 당연하여 증명이 필요하지 않은, 진릿값이 참이기만 한 말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하찮거나 쓸데없는 소리이기보다, e의 질문에 상응한 f의 실소리(實-.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말)이자 신소리(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소리 붙은 낱말이 많다. 주어진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은 '딴소리'다. '선소리'는 이치에 맞지 않은 서툰 말이다. 잡소리(시끄러운 여러 가지 소리. 쓸데없이 하는 잡스러운 말을 뜻하는 잡말의 비속어) 허튼소리(함부로 지껄이는 말) 뚱딴짓소리(느닷없이 하는 엉뚱한 소리) 개소리(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가 있다. 나의 어떤 말이 개소리가 아니라 신소리로 받아들여진다면 대화는 성공적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말을 쌓아서 세우면 그게 '말씀(말+쌓다)'이 되기 때문이다. 내 말씀과 네 말씀이, 네 말씀과 내 말씀이 어우러져야, 그게 대화다. 대화란 말로 성을 쌓는 일이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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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리'에 대한 사전의 정의

표준국어대사전 캡처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지은이 해리 G. 프랭크피트 옮긴이 이윤,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 필로소픽, 2017

2. 최봉영, 『묻따풀 한국말』, 묻따풀학당, 2025

3. 최종희, 『고급 한국어 학습 사전』(2015년 개정판), 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4. 표준국어대사전

5.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4월06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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