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과 변호인들께서 원만히 협조해주신다면 기일이 예정돼 있는 12월이나 그 무렵에는 심리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일응 예상하고 있으니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원만한 심리에 적극 협조해 주실 것을 당부 ……."
내란 재판을 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지귀연 재판장이 지난 8일 열린 공판에서 했다는 말입니다. "일응"에서 눈이 멎습니다. 낯섭니다.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평소 안 쓰는 이유입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언론은 "일단"으로 바꾸어 썼고 일부 언론은 "일응(일단)"이라고 풀어서 썼습니다. 일응(一應. いちおう)은 일본식 한자어입니다. 우선/어떻든/일단/하여튼/한 번/한 차례라는 뜻입니다. 맥락을 보면 애당초 일단을 쓰면 될 일이었습니다. 빼도 관계없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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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다듬은 말 캡처
말을 난해하게 하면 법원 문턱은 높아집니다. 소통이 막힐 테니까요. 모호하게 말하면 책임도 덥니다. 말뜻이 불분명하니까요. 의구심을 잠재우려면, 사전을 찾아야만 비로소 이해되는 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응 대신에 한번/우선/일단을 쓰라고 정부 당국(문교부)이 권고한 것이 1977년 유신 정권 시절부터입니다. 법원 저널 '법원사람들'이 일단, 우선, 한번, 어떻든으로 문맥에 맞게 바꿔 쓰라고 권고한 2021년 3월의 글도 홈페이지에서 확인되고요.
일찍이 약 반세기 전인 박정희 유신 집권기에 이 단어를 순화하라고 했다는 것이나, 그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바뀌지 않은 것이나 둘 다 흥미롭습니다. 법률(행정 포함) 용어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지속해서 다듬어야 합니다. 옳다, 좋다 하면 될 것을 아직도 가(可)하다 하니까요. 개진(開陳)하다도 펴다, 밝히다로 쓰면 됩니다. 안면부는 얼굴이면 족하고요. 일언(한 마디) 일족(한 켤레) 일말(약간) 일익(한쪽/한편) 일착(한 벌) 하는 [일-] 단어도 지나칩니다. 저 위 저널 글에서는 말법도 바로잡습니다. ∼에 위반하다가 아니라 ∼을(를) 위반하다 라고요. 위반하다는 타동사이니까요.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해야 합니다. 헌법과 법률"에" 위반했다 하지 말고요. 법 다루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말법을 지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야말로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금상첨화(錦上添花) 말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법원사람들, [판결문 같이 읽기] 어려운 판결문, 쉽게 풀어 읽기 - https://www.scourt.go.kr/portal/gongbo/PeoplePopupView.work?gubun=23&seqNum=2678
2. 국립국어원 다듬은 말 '일응' - https://www.korean.go.kr/front/imprv/refineList.do?mn_id=158&pageIndex=1
3. 표준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9월10일 05시55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