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세기의 이혼

3 weeks ago 18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지켜볼 때 상당한 쾌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평소 질투하고 시기하던 대상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은 소위 잘나가는 유명 인사의 이혼에 큰 관심을 갖는다. 완벽할 것만 같던 이도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불행을 겪는다고 하니 묘한 위안을 받기도 한다. 언론이 연예인, 정치인, 기업인 등의 이혼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것도 이런 대중의 기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종 접하는 '세기의 이혼'(Divorce of the Century)이란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세기의 이혼은 단순히 저명인사의 이혼을 칭하는 말이 아니라, 유명인 이혼 중에서도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사례를 상징적으로 일컫는다. 권력 구조에 영향을 주거나, 정치적 파장이 크거나, 재산 분할 액수가 천문학적이란 말이 나올 만큼 큰 경우 등이 포함된다. 이미지 확대 왕세자 시절 찰스 국왕과 다이애나 왕세자빈 (런던 EPA=연합뉴스) 지난 1981년 2월 24일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는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모습. 가장 대표적인 세기의 이혼으로 중세 영국 왕 헨리 8세와 스페인 공주 출신 왕비 캐서린의 이혼이 꼽힌다. 이 이혼으로 영국의 국교가 바뀌고 영국사는 물론 유럽 중세 역사가 요동쳤다. 원래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수였지만, 남편이 일찍 사망하자 동맹 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동생과 재혼했다. 하지만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지 않자 헨리 8세는 왕위 계승을 위해 교황에게 "형수와 결혼은 성경 교리에 위배되므로 혼인 무효를 선언해달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했다. 결국 헨리 8세는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자신을 수장으로 하는 새로운 국교를 선포했다. 영국 성공회의 탄생이었다. 헨리 8세 사례에는 못 미치나 찰스 영국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빈의 이혼도 세계적인 관심사였다. 동화 같은 '세기의 로맨스'로 시작해 비극적 드라마 같은 파국으로 마무리된 관계였다. 화려한 시작은 왕세자의 불륜, 세자빈의 우울증과 섭식장애 등 속칭 막장 드라마 같은 과정을 거쳐 세기의 이혼으로 끝났다. 그런데 비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이애나는 이혼 이듬해 파파라치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비판받던 영국 왕실은 결국 신비주의를 포기하고 대중 친화적이고 개방적으로 변신해야 했다. 재산 분할 액수로는 글로...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