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민주정의 탯줄, 공명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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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대선의 날이 밝았다. 이제 전국 투표소에서 온종일 투표가 이어지고 밤샘 개표를 거쳐 당선인을 가리게 된다. 새 대통령은 안팎으로 엄중한 정세 속에 임기를 시작하게 돼 어깨가 더 무겁다.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 가속화로 우리 경제와 무역, 산업 전반은 위기에 처했고 나아가 한반도 전체가 어떤 상황에 휘말릴지 모를 불확실성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내수 경기 부진까지 겹쳐 세수 펑크와 재정 악화가 우려되고 청년 실업, 인구 절벽 등 난제가 산적했다. 무엇보다 이념, 계층 등에 따라 점점 더 갈라지는 국민 여론을 봉합하고 치유할 막중한 책무도 있다. 전임자 중도하차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고 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임기를 시작해 준비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중대한 선거이고 선거 관리 역시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만에 하나 선거 관리에 부실과 허점이 생겨 불필요한 시비를 유발한다면 이미 여러 악재에 휘청이는 우리 공동체에 짐을 더 얹게 된다. 또 그로 인한 국력 소모는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에 막대한 손해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채택한 체제인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현재 대한민국 시스템은 선거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므로 선거 공정성이 조금이라도 의심받는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그러니 헌법기관으로 굳이 독립시켜 우리 혈세로 봉급을 주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임무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미지 확대 투표소 설치 작업하는 선관위 관계자들

투표소 설치 작업하는 선관위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2일 서울 용산구 청파도서관에 마련된 청파동 제1투표소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소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2025.6.2 [공동취재]
hkmpooh@yna.co.kr

선거는 공정성이 생명이다. 과정의 공정성을 믿기 힘들면 결과도 신뢰받지 못하며, 공정성은 무결성과 투명성으로 담보된다. 특히 선거 무결성을 추구하는 건 작은 부정행위나 실수에 의한 착오라도 결국 선거 전체의 공정성을 불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016년 오스트리아 대선에선 우편투표 관리 부실이 일부 드러나자 선거 결과를 백지화하고 재투표를 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헌재는 관리 부실이 결과에 영향을 줬는지 고려하지 않고 '절차상 결함으로 선거 전체 신뢰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무효 결정을 내렸다. 이는 선거 무결성을 중시한 대표 사례로, '사회적 약속'의 가치에 관한 민도가 높은 나라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 한편엔 이미 선거 음모론이 자리 잡았다. 부정선거론은 현실에서 나름의 세력을 형성했음을 볼 수 있다. 음모론은 만드는 쪽의 문제가 많지만, 그 계기를 제공하는 쪽도 문제가 없지 않다. 선관위가 장기간 드러낸 여러 문제점을 보면 부정선거론의 태동에는 선관위 책임도 적지 않다. 부정선거 논란 속에서도 각종 의혹과 관리 부실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고 해명도 명쾌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와서다. 선거 민주주의 관리 책임자가 정작 규칙 위반에 대한 감수성은 일반 국민보다 떨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광경이 보이는 듯하다. 이미 사전투표에서 부실 관리가 재연됐고 부정투표마저 적발됐다. 심지어 부정투표로 구속된 사람은 선거사무원이었다. 투표용지가 대거 외부로 반출되는 상식 밖 사태도 일어났다. 선관위 사무총장과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로 진화에 나섰지만, 국민은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의 진정성을 곱지 않게 보는 듯하다. 전문가들도 일제히 선관위가 또다시 부정선거론의 빌미를 스스로 주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다. 특히 선관위 자정 능력이 떨어진 만큼 부실 관리 사례에 대해선 외부 기관 조사로 관련자를 제재할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선거는 아주 작은 사례라도 반칙과 부정이 발견되면 전체 틀에 대한 의심을 사게 되는 민감한 이벤트다. 심하면 결과를 승복하느냐의 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으니 관리 주체는 공정성 확보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반복돼선 안 된다. 투표지가 이상하다, 참관인 도장이 잘못 찍혔다, 개표기가 오작동했다 등의 의혹들이 제기될 시대는 이제 지나지 않았을까. 부디 이번 대선은 투표, 개표, 당선인 확정 발표까지 잡음 없이 잘 마무리되길 기대한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6월03일 05시11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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