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경중은 가능할까…국제정치엔 감성이 없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미국과 중국은 왜 저렇게 싸우나요?" 그래도 나름 언론계에 몸담았다 보이는지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이 가끔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중 간 무역 충돌 제2라운드가 열리자 일반인도 국제 정세에 눈을 돌리고 있다. 환율, 물가, 증시 등 생활경제에 직접 영향을 주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 일테다. 트럼프 발 미·중 관세 전쟁은 일단 양국 간 90일 빅딜로 전기를 맞았다. 다만 국제정치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있다면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사실 예고된 수순임을 알 수 있다. '블러핑' 같은 초강수로 상대를 압박한 뒤 진짜 원했던 패를 들이밀며 실익을 취해가는 트럼프 표 외교다.
글로벌 경제에 패닉을 몰고 온 무역 전쟁이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됐다. 하지만 '트럼프 웨이'를 이해했다면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란 감이 오지 않는가. 양국 합의는 치킨게임의 한시 유예일 뿐이며 국제 정세 향배에 따라 다시 요동칠 수 있다. 미중 충돌 재개의 가장 큰 피해국은 우리다. 미국 상무부의 1분기 통계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대미 수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는 수출 중심인 우리 경제의 미국과 중국 의존도가 사실상 절대적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시킨다. 이미 전문가들은 대외 여건 악화와 저성장 장기화가 1997년 환란 못지않은 경제 대란을 부를 가능성을 경고한다. 한반도 역사에서 반복됐듯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이 재연 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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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미·중 무역 충돌이 경제에 국한한 문제일까. 진단이 미흡하면 해법도 잘못 될수 있다. 더 넓고 깊은 시야가 필요한 위기 시점이다. 미·중 간 무역 전쟁은 사실 안보 전쟁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촉발한 시초는 시진핑 주석이 통치 이념이자 국가적 목표로 내세운 '중국몽'(中國夢)이다. 중국몽은 2049년에 미국을 넘어 세계 패권국이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다. 이는 올해 세계 최대 기술제조국으로 도약한다는 '중국제조 2025'와 현대판 실크로드를 구축해 주변국과 경제 공동체를 이룬다는 '일대일로', 양대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된다. 최강대국 미국 입장에선 국가생존 차원에서 절대 용인 불가한 도발적 목표를 이인자가 공개 추진하고 나선 것이어서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이 받아들인 분위기다.
무엇보다 기술 패권은 군사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중국제조 2025에는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반도체, 우주개발 등 첨단 분야에서 미국을 제친다는 세부 과제들이 있다. 이는 무기 개발과 직결된 것들이다. 현대전의 정수인 미사일 방어 시스템, 핵 투발 수단, 전투기와 정찰기 등의 성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여서다. 첨단기술 패권은 단순히 경제 번영과 무역 우위를 넘어 국가 생존을 좌우할 군사 패권과 동의어란 뜻이다. 미국이 주요 명문대와 연구소 등에서 중국 학자와 연구원들을 추방하고 동맹국들에도 첨단 기술 품목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미·중 충돌은 앞으로도 어떤 양태이든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끝나지 않을 숙명의 대결임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과거에도 이인자의 도전을 그냥 넘긴 적이 없다. 과거 세계 양대 세력이자 숙적이던 소련의 붕괴를 사실상 이뤘고, 세계 경제 패권에 내심 도전했던 일본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좌절시켰다. 미국의 외교안보 원칙은 이처럼 도전자에 대한 본보기적 응징으로 요약될 수 있다. 또 동맹국에 대해선 '배신의 외교'를 불용하는 암묵적 원칙도 이어져 왔다. 이런 역사를 돌아볼 때 안보 지원은 미국에서 받고 경제 공조는 중국과 한다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이 혈맹으로서 지속 가능한 공식인지를 놓고 인지부조화에 빠져선 안 될 듯하다. 지혜롭게 양쪽을 오가며 실익을 취하는 것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국제사회의 현실은 냉혹하다.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14일 11시22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