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준영 리움 학예실장이 본 이불
또 벽면에는 거울이 부착돼 있지만, 그 표면이 일그러져 ‘예쁜 인증샷’을 찍을 순 없고 희미한 자신의 모습만 비칩니다. 이불 작가는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수많은 ‘이상향’을 이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지만 버티고 서 있는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묘사해 왔습니다.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4일 개막한 ‘이불: 1998년 이후’전은 이런 이불 작가의 이상향에 관한 탐구를 담은 연작 ‘몽 그랑 레시(Mon gran recit)’를 중심으로 약 30년간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인 곽준영 학예실장에게 전시 구성 과정부터 애착이 가는 작품까지 물어봤습니다.
―리움미술관은 왜 지금 이불 작가를 조명하게 됐나요?“올해 전시를 하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이불 작가는 오래전부터 리움에서 전시하고 싶은 작가 리스트에 있었죠. 다만 우리 미술관에서만 전시하기보다 국제 투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홍콩 M+ 미술관과 공동 기획으로 전시를 열게 됐습니다. 2002년 로댕갤러리 개인전 이후 23년 만에 삼성문화재단 산하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해 뜻깊습니다.”
―전시 장소가 미술관 내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입니다. 장소를 선정한 과정도 궁금합니다.
“작품의 성격과 규모가 맞아떨어졌습니다. 이불 작가의 연작 ‘몽 그랑 레시’는 이상향을 꿈꾸었던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건축과 미술을 비판적으로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요.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는 렘 콜하스가 설계한 곳으로, 콜하스가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건축에서 자주 쓰인 콘크리트를 창의적으로 사용하고 여기에 유리를 접목했다는 특징이 ‘몽 그랑 레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블랙박스 공간 구성에선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나요.“블랙박스에 어떤 작품을 전시할지는 일찍부터 결정됐습니다. 이불 작가는 이 공간에서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공상과학(SF), 우주적 분위기를 상상했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지닌 ‘태양의 도시 Ⅱ’를 거대한 풍경으로 두고, 그 안에 1990년대 후반부터 발표된 초기작 ‘사이보그’ ‘아나그램’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Ⅰ’ 등의 작품이 서로를 반사하며 혼란스러운 광경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전시의 멜랑콜리한 서곡과도 같은 곳입니다.”
―블랙박스에서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면 터널을 통과해야 아래 전시장이 보이는 구조가 흥미로웠습니다.
“그 터널은 2012년 작품 ‘수테랑’인데요. 이 작품은 늘 전시장 입구에서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문처럼 설치됐습니다. 제목 ‘수테랑’이 프랑스어로 지하 혹은 감춰진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은 지하 공간으로 안내하는 통로이며, 입구에서는 작품의 전체 구조와 외형을 파악할 수 없도록 한 것이 설치 의도입니다. 이 작품을 그라운드 갤러리 입구에 둔 것은 작품의 원래 의도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수테랑’을 빠져나오면 빈 공간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품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결정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가득 채우자’고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2005년부터 전개된 ‘몽 그랑 레시’ 연작의 주요 작품들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많은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여러 작품이 벽면이 없이 서로 겹치고 겹치는, 중첩된 풍경은 이 연작의 특성을 살린 겁니다. ‘몽 그랑 레시’는 하나의 커다란 서사 대신, 다수의 파편적인 작은 서사들을 비선형적으로 연결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들이 서로 겹치며 또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만들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1998년부터 올해까지 작품을 봤는데, 앞으로 이불 작가의 예술은 어떤 길을 가게 될 것 같나요.
“이불 작가는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공부하고 가능한 미래에 대해 열린 사유를 해온 작가이지만, ‘규정’을 거부하는 사람이기에 예측이 어렵습니다.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앞으로도 시대를 성찰하는 작업을 지속할 거라는 것 이외에는….”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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