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기업 올릭스가 올초 일라이릴리와 대규모 기술수출(LO) 계약을 맺은 데 이어 다국적 뷰티기업 로레알과의 새로운 협력을 발표했다. 올릭스의 유전자치료제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탈모·모발 화장품 및 샴푸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올릭스와 로레알은 공동 신약 개발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바이오벤처 100곳 중 낙점
올릭스는 로레알과 피부·모발 공동연구 계약을 맺었다고 9일 공시했다. 올릭스는 “로레알은 추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독점적 협상 권리를 가진다”며 “이는 기술이전 계약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올릭스의 핵심 기술인 짧은 간섭 리보핵산(siRNA)을 이용해 로레알이 주문하는 탈모 예방 또는 모발 촉진 관련 결과물을 개발하는 것이 이번 계약의 주요 골자다. siRNA는 질병을 유발하는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사전에 단백질 설계도를 파괴하는 유전자치료제 성분이다. 이동기 올릭스 대표는 “일반적인 기술수출이 아니라 공동연구 형태의 계약이지만 추가 공동연구에서는 기술이 이전될 수 있다”며 “앞으로 계약금과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도 추가로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향후 파트너사와의 신약 개발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로레알도 “115년에 걸쳐 축적한 피부 및 모발 분야 전문성과 올릭스의 생물학 연구 성과를 결합해 피부·모발 건강, 특히 재생과 수명 연장에서 혁신적 돌파구를 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로레알 측의 비밀 유지 요청에 따라 올릭스가 수령하는 선급금과 총 계약 규모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로레알이 탈모·모발 신제품을 상업화한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올릭스가 연구비 명목으로 수백억원대 선급금을 수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대표는 “로레알은 이번 계약을 위해 세계 바이오벤처 100여 곳을 검토하다가 올릭스를 선택했다”며 “그만큼 의미가 큰 계약”이라고 했다.
로레알이 올릭스의 탈모 치료제 후보물질 ‘OLX104C’를 눈여겨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OLX104C는 남녀 모두에게 탈모증을 유발하는 안드로겐 수용체(AR)의 발현을 억제하는 siRNA 기반 후보물질이다. 현재 주로 사용되는 탈모약 ‘프로페시아’가 탈모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DHT)의 생성을 막는 약인 데 비해 OLX104C는 생성된 탈모 호르몬이 작용할 수 없게 수용체를 없애는 발현 억제 방식의 약이다.
◇ 글로벌 대기업과 연속 계약
올릭스가 지난 2월 다국적 제약사 릴리에 이어 이번 로레알의 ‘러브콜’을 잇달아 받으면서 세계 무대에서 기술력을 검증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릭스는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 후보물질(OLX702A)을 최대 9117억원 규모로 릴리에 기술이전했다. MASH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지방간이 생기며 발병하는 대사질환이다. OLX702A는 지방간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 유전자(MARC1)를 표적해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비슷한 원리의 경쟁 약이 없는 ‘혁신신약’(퍼스트 인 클래스)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올릭스 주도로 호주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1상 종료 후엔 릴리가 임상시험 ‘바통’을 넘겨받는다.
이 대표는 “덴마크 노보노디스크, 미국 앨나일람, 애로헤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4대 siRNA 치료제 개발사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