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경쟁작 잇딴 개봉에도 매서운 뒷심…5월 황금연휴 승자
관객 평가 보고 관람 여부 결정…"입소문 좋으면 '개싸라기' 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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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상반기 극장가 최고 기대작으로 꼽힌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 17'. 주요 한국 영화들은 이 작품과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개봉 시점을 조정하기까지 했다.
그 덕분인지 '미키 17'은 지난 2월 개봉일 하루에만 약 25만명을 모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 듯했다. 그러나 최종 관객 수는 301만여 명에 그치며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일일 관객 수 8만명으로 시작한 황병국 감독의 '야당'은 어느새 '미키 17'을 제치고 올해 개봉작 가운데 최고 흥행작 등극을 앞두고 있다.
두 영화의 흥행 레이스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개봉 2주 차 관객 수였다. '미키 17'의 2주 차 관객 수가 1주 차의 절반 가까이 감소한 것과 달리 '야당'의 1·2주 차 관객 수 격차는 크지 않았다.
과거 개봉 첫날 관객 수인 '오프닝 스코어'가 영화 흥행의 가늠자로 여겨졌다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2주 차 관객 수를 보면 흥행할지가 보인다"는 말이 영화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보다 신중히 영화를 고르게 된 관객이 개봉 직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관람을 결정하는 게 트렌드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배급사들은 개봉·홍보 전략을 '장기전'에 맞춰 짜기도 한다.
11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야당'은 개봉 25일째인 전날 누적 관객 약 290만명을 동원했다.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인 지난달 18∼20일 61만명이 관람했다. 개봉 2주 차 주말에는 할리우드 어드벤처물 '마인크래프트 무비' 개봉에도 52만명을 모았다.
마블 스튜디오 신작 '썬더볼츠*', 마동석 주연 오컬트 액션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 이혜영 주연의 '파과'가 개봉한 30일에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달 1∼6일 황금연휴 기간 83만명을 불러 모아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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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야당'이 장기 흥행한 배경에는 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의 섬세한 개봉 전략이 있었다.
플러스엠은 5월 초 최대 엿새간 휴일이 이어지는 '대목'을 잡기 위해 이 기간의 직전이 아닌 2주 전에 개봉하는 묘수를 뒀다. 개봉 후 1∼2주간 실제 관람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 연휴가 낀 개봉 3주 차에 자연스레 관객이 몰려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플러스엠 관계자는 "'야당' 마케팅 전략의 가장 큰 부분은 '입소문'이었고 이를 위해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신작 3편이 개봉한 날에는 박스오피스 순위가 떨어졌지만, 영화의 힘에 따른 입소문 덕에 곧장 1위로 복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의 봄'이나 '탈주', '청설', '말할 수 없는 비밀' 등이 오프닝 스코어에 비해 최종 성적이 좋았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이후 관객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입소문은 영화의 흥행 여부를 판가름하는 요소로 중요성을 더하는 추세다. 영화 티켓 가격이 오르고 극장과의 심리적 거리감도 생긴 요즘 관객은 '똑똑한 한 편'을 골라 보려는 경향이 커졌다는 게 영화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예전이라면 주연 배우가 누구인지, 어떤 감독의 작품인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실제로 영화를 본 사람의 평가가 어떤가가 관객이 그 영화를 볼지 말지 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며 "평가가 좋다면 이른바 '개싸라기 흥행'(시간이 갈수록 관객 수가 증가하는 것)이 되지만, 반대라면 짧으면 개봉 2∼3일 만에, 길어도 2주 차에는 관객 수가 뚝뚝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물론 오프닝 스코어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오프닝 스코어보다는 2주 차 관객 수가 흥행 가늠자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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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변화한 트렌드에 발맞춰 전통적인 홍보 전략 대신 새로운 전략을 쓰는 배급사도 점차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소방관', '히트맨 2', '승부'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 바이포엠스튜디오다.
바이포엠은 개봉 전 막대한 마케팅비를 투입하는 대부분의 배급사와 달리 개봉 전 6, 개봉 후 4의 비율로 마케팅비를 쓴다. 입소문이 중요한 지금 같은 시장에선 개봉 전보다는 개봉 후가 더 힘을 줘야 하는 시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실제 관람객이 쓴 리뷰와 평가를 토대로 온라인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한상일 바이포엠 영화·드라마사업 부문 이사는 관객의 입소문을 얻을 만한 포인트를 작품마다 각기 다르게 잡아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며 "덕분에 '소방관', '히트맨 2', '승부' 모두 슬로 스타터였지만 흥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rambo@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11일 08시00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