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에 마땅한 주자가 안 보이던 2020년 6월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불쑥 이 사람을 소환했다.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없더라”라며 높이 평가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곤 각 정당의 영입 경쟁이 붙었고, 12·3 비상계엄 하루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돌연 내놓은 약속은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해 이 사람 1000명을 키우겠단 것이었다. ‘요리 멘토’ ‘장사의 신’ ‘자영업자들의 구세주’로 불리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두고 한 말들이었다.
갑질, 위법 논란에 추락한 ‘장사의 신
안티가 거의 없던 백 대표에 대한 신뢰는 최근 들어 산산이 부서졌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발굴해 낸 맛집을 프랜차이즈로 만들었는데, 예상 매출액과 수익률을 부풀려 점주들을 모집했다는 논란이 지난해 불거진 게 시작이었다. 지난해 11월 증시 상장 이후부터는 재료 품질 논란, 원산지 허위 표시, 식품위생법 위반, 허위광고 의혹 등 각종 논란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왔다.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것만 14건에 이른다. 결국 백 대표는 이달 초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방송 활동과 전통시장 프로젝트 등으로 쌓은 정직, 신뢰, 진정성 등의 이미지가 오히려 백 대표에겐 독이 됐다. 사실 백 대표는 유난히 선하지도, 유독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업가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는 과도한 기대를 했고 실망은 비난과 분노로 이어졌다. 본질적으론 백 대표가 몸담고 있는 한국의 프랜차이즈 사업이 ‘선한 사업가’를 만들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결국엔 이미지와 현실의 충돌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프랜차이즈 사업의 본질은 공동사업자 간의 공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본사와 점주의 공생은 대개 가게를 여는 초기에 끝난다. 점주는 장사가 잘돼 ‘매출’을 늘리는 게 중요하지만, 본사는 가맹점에 많이 납품해 ‘매입’을 늘리는 데 치중한다. 가맹점에 식자재, 포장재 등 원·부재료를 공급하며 붙이는 마진인 ‘차액가맹금’이 본사의 주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본사로선 기존 가맹점을 잘 키우는 것보단 가맹점을 하나라도 더 늘리는 게 득이 된다. 이른바 ‘떴다방’ 식으로 브랜드를 마구 찍어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본사가 가맹점을 대상으로 영업하니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본사로부터 필수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품목을 과도하게 지정하거나 광고비, 수수료 등을 점주에게 전가하는 관행이 계속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만2000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점주 54.9%가 본사로부터 불공정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몸집을 불려 사모펀드에 매각하고, 상장을 하면 매출과 이익을 개선하라는 주주들의 요구가 더해져 이해관계가 더 복잡해진다.
프랜차이즈 상생 모델 고민해야 미국 유럽 등 해외 프랜차이즈는 수익 구조가 다르다. 가맹점의 매출이나 이익에 따라 일정한 로열티를 받는 구조여서 본사와 가맹점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물론 해외 모델이 무조건 답은 아니다. 본질적으론 부동산 회사인 맥도널드 모델을 쉽게 따를 순 없다. 차액가맹금 구조가 초기 비용을 낮춰 창업 경험 없는 자영업자들이 손쉽게 창업을 할 수 있게 해준 측면도 있다.방송을 내려놓고 기업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백 대표는 “이제부턴 단 한 분의 점주님도 두고 갈 수 없다”고 했다. 약속을 실천해야 하겠지만 선한 의지를 강조한다고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본사와 가맹점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한국형 모델을 찾기 위해 프랜차이즈 업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백종원이 퇴장한 자리에 또 다른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나길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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