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유괴범을 다시 마주친 배경
7일 발표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검찰청은 폐지되고 기소는 공소청,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 맡는다. 검찰의 수사권을 없애고 기소와 공소 유지만 남기는 게 핵심이다. 법안 디테일을 두고 정치권의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현장에선 “검찰개혁 논의 때마다 범죄 피해자들은 배제된다.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라는 비판이 거세다.
검찰개혁 명목하에 이뤄진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피해자 고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밝힌 유괴 사건이 대표적 예다. 당시 부모 신고와 경찰 수사로 송치가 이뤄지려 하자 범인은 눈치채고 도망쳤다. 몇 개월 지나자 그는 버젓이 동네에 모습을 드러냈다. 보복이 두려운 아이 가족이 검찰에 문의하니 “기소 중지됐다. 검사가 바뀌어서 사건 내용도 모르니 경찰에 연락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도 “잘 모르는 사건”이라고 했다. 겨우 원래 수사팀을 찾아냈지만 “담당 수사관이 다른 데로 인사 났다. 추가 피해를 당해서 별건 신고돼야 뭐든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부모는 피가 끓었다.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후 범죄 피해보다 수사기관 상대하기가 더 힘들다는 푸념이 커졌다. 수사의 질도 떨어졌다. 피해자가 베테랑 수사관을 만나는 것 자체가 ‘러키’한 일이 됐다. 경찰은 수사종결권이 생겼지만 이를 운영할 시스템과 인력은 구축하지 못한 상태였다. 업무가 폭증하자 10년 차 전후의 경사·경위 수사관들의 수사 부서 탈출 러시가 이어졌다. 그 자리는 일명 ‘노량진 수사관’으로 채워졌다. 경찰학원을 다니다 합격한 뒤 2, 3년 차 되는 순경 수사관들이다.
일부 수사관들은 피해자에게 ‘직접 증거를 수집해 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전문성이 필요한 사기 횡령 배임 사건이 특히 더했다. 피해자 입장에선 증거가 없으니 수사기관 도움을 받으려는 것인데 환장할 노릇이다. 변호사들 사이에선 ‘오늘도 수포자(수학 포기자 아닌 수사 포기자)는 불송치로 향해 간다’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검찰개혁, 범죄 피해자 고충 반영해야 검찰도 책임감이 사라졌다. 수사권 조정 전엔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지휘해도 사건번호가 그대로 유지됐다. 검사는 ‘내 사건’이란 생각에 경찰 수사 경과를 꼼꼼히 챙겼다. 수사권 조정 뒤엔 검사가 보완수사로 사건을 경찰에 돌려보내면 일단 처리된 것으로 분류된다. 경찰이 사건을 재송치하면 새로운 사건번호가 부여된다. 이 과정에서 송치→보완수사→재송치→보완수사 식으로 책임을 미루는 ‘핑퐁 수사’가 수시로 발생했다. 대검에 따르면 평균 형사사건 처리 기간은 2020년 142일에서 지난해 312일로 증가했다.한 피해자는 “장기간 수사가 지연되니 ‘범죄자 천국, 피해자 지옥’이라는 절규가 절로 튀어나왔다”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개혁도 수사권 조정의 데자뷔가 될까 우려된다. 수사권 조정은 진영 논리 속에서 패스트트랙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검찰개혁을 폭풍처럼 몰아쳐 전광석화처럼 끝내겠다”고 하고 있다.
새 형사사법 체계 구축은 돌다리 두드리듯 신중히 해야 하는 일이다. 보완수사권, 전건 송치 등 향후 논의될 세부안은 범죄 피해자 입장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현장 조사도 필수다. 성급하게 추진될수록 범죄자는 웃고 피해자는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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